미국 뉴욕 타임스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기 전, 제23회 올림픽의 주 무대가 될 우리나라의 평창을 이렇게 설명했다. “북한으로부터 약 80km 떨어진 평창은 주로 감자와 소를 키우는 산골로 알려졌었다. 한국에서도 가장 낙후되고 북한과 가장 긴 군사분계선을 접하고 있는 강원도 내에서도 가장 빈곤한 지역 가운데 한 곳이었다"
2003년, 처음 우리가 동계 올림픽 유치 신청을 낼 때만 해도 국제 사회는 한국의 ‘평창’이란 도시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2003년엔 캐나다 밴쿠버에 패했고 2007년 두 번째 도전에서는 러시아 소치에 밀렸다. 낙후된 지역의 경제적인 이유와 북한과 가까운 정치적인 이유로 올림픽을 유치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견해가 우리를 낙심하게 했다. 하지만 절치부심하여 도전한 우리나라는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총 95표 중 63표로 1차 과반을 획득하는 파란을 일으키며 대회 유치에 성공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과 더불어 4대 국제스포츠 이벤트를 모두 유치한 다섯 번째 나라가 되었고 평창은 올림픽 도시로 새로운 변화를 시작했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최초의 근대 올림픽이 열렸다. 하지만 겨울 스포츠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날씨도 문제였고 겨울 스포츠를 펼칠 경기장 건설도 어려운 문제였다. 그러나 국립올림픽 위원회 창립위원인 빅토르 구스타프 발크는 포기하지 않았다. 동계 스포츠가 올림픽에 포함되도록 힘을 기울인 끝에 1908년 런던 올림픽에 피겨스케이팅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동계 종목만 별도로 열게 된 건, 1924년의 일이었다. IOC는 1924년 7월 파리 올림픽에 앞서 1월 25일부터 2월 5일까지 프랑스 샤모니에서 ‘국제 동계 스포츠 주간’이란 이름으로 겨울철 종목만 따로 개최했다. 1926년에 IOC는 제26차 리스본 총회에서 동계 올림픽을 분리하기로 했고, 1924년에 개최됐던 샤모니 대회를 제1회 동계 올림픽으로 인정했다.
정원식 국무총리는 8일 ”정부는 오는 2006년에 열릴 제20회 동계 올림픽 대회를 한국에 유치토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 총리는 이날 오전 전북 무주에서 열린 올해 8번째 국민과의 대화 자리에서 ”시기적으로 2006년 동계 올림픽 대회는 우리나라 유치가 가능하다“면서 정부는 이 대회 유치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동계 올림픽 유치의 꿈을 꾼 건 1992년의 일이었다. 그리고 처음 생각한 동계올림픽의 후보지는 평창이 아닌 무주였다. 전북 무주는 1993년 7월, 1997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유치에 성공했고 이로 인해 2002년 또는 2006년 동계 올림픽 유치의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그러나 강원도가 1999년 동계아시아경기대회를 유치하면서 상황은 이파전 양상을 보이게 됐다. 강원도와 전북은 2002년,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신청을 놓고 경쟁을 벌였으며 정부는 강원도와 전북이 동시에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서자 국내 후보지 선정 권한을 대한올림픽위원회(KOC)에 넘겼다. 당시 KOC실사단은 전북 강원 공동개최, 강원개최, 전북개최, 국내유치 포기 등 4가지 안을 검토했다. 그리고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 후보지로 강원과 전북을 공동선정하면서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됐다. 정부는 김태겸 행정부지사, 강원도와 전북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강원-전북 공동개최 선정은 IOC(국제올림픽위원회)의 헌장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분산개최를 위해 주개최 도시(Host City)를 선정할 것을 요청했고 이후 치러진 임시총회 투표를 통해 강원도는 43표, 전북은 24표를 얻어 강원도가 2010년 동계올림픽 주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324km, 약 3시간 30분 이상 떨어진 두 곳에서 동계올림픽을 분산 개최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었다.
2002년 2월 미국 솔트레이크동계올림픽 현장에서 당시 강원도 김진선 지사는 평창의 단독개최를 주장했다. 대한올림픽위원회(KOC)는 임시총회를 열고 ‘평창-무주 분산 유치’를 ‘평창 단독 유치’로 변경하는 대신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 신청 우선권을 전북에 주기로 한다. 그러나 평창이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하게 되고 김진선 강원지사가 탈락 직후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재도전하겠다고 밝히면서 올림픽 유치전쟁 2막이 시작되었다. 이 중요한 시점에 생각지도 못한 불운이 전라북도에 닥쳤다. 2004년 국제스키연맹(FIS)이 덕유산 스키코스에 부적격 판정을 내렸고 대한올림픽위원회(KOC)는 2004년 12월 30일 태릉선수촌 내 국제빙상장에서 임시 위원 총회를 열어 2014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할 국내 후보 도시로 강원도 평창을 최종 선정했다. 그렇게 동계올림픽 개최지 후보를 놓고 치열한 유치 경쟁을 했던 두 지역이었지만 무주는 평창 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하며 멋진 스포츠 정신을 보여주기도 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자 냉전의 상징인 대한민국 강원도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인 만큼 대회 안전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며 참가를 주저하는 나라도 있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평화와 화합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살려 북한의 참가가 결정되면서 이러한 우려는 불식되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남북은 고위급 회담(1월 9일)을 거쳤고 북한 예술단 파견을 위해 남북 실무접촉(1월 15일)과 남북 고위급회담 실무회담(1월 17일)을 거친 뒤 1월 20일 스위스 로잔 소재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본부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 남북한 올림픽위원회, 체육 관계 장관, 조직위원회가 모여 4자 회담을 열고 북한의 평창 동계 올림픽 참가를 합의했다. 이에 따라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은 물론 남북한 공동 입장 구성 등이 이뤄지면서 평화와 화합의 올림픽 정신을 가장 잘 보여준 올림픽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의 공식 마스코트인 수호랑은 서쪽을 지켜주는 신령한 동물인 백호를 캐릭터화한 것이다. 올림픽 정신인 세계 평화와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 관중 등을 지켜준다는 의미로 ‘수호’와 호랑이와 강원도를 대표하는 정선아리랑의 ‘랑’을 합친 의미이다.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는 마스코트를 선정하기 위해 2014년 대국민 공모를 냈으나 당선작을 뽑지 못했다. 처음엔 진돗개와 까치, 하늘다람쥐까지 다양한 동물들을 캐릭터화하려고 했으나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승인을 받지 못했고, 결국 마스코트 작업은 국내 디자인 전문가 그룹에 맡겨졌다. 2년간의 개발 끝에 30년 전 1988년 서울 올림픽의 마스코트인 호돌이와의 연속성을 이어가자는 취지에서 백호가 선택돼 ‘수호랑’이 되었고, 동계패럴림픽 대회의 마스코트는 강원도를 상징하는 동물인 반달가슴곰을 형상화한 '반다비'로 결정됐다. 이 또한 88년 장애인 올림픽의 마스코트인 ‘곰두리’와의 연속성을 이어가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