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문명을 가리켜 ‘반도체시대’ 혹은 반도체의 원료인 규소의 이름을 따서 ‘규석기시대‘라고 한다. '반도체'란 물질의 사용으로 예전에 상상할 수 없던 편안한 삶을 누리는 현재를 일컫는 말로, 실제로 우리 주변 전자제품의 대부분에는 반도체가 들어있다. 우리가 날마다 사용하는 컴퓨터, 스마트폰, 카메라, 자동차, 냉장고, 세탁기 같은 전자제품부터 USB메모리, SD카드 등의 저장매체, 심지어 전자여권까지 생활 곳곳에 광범위하게 반도체가 사용되고 있다.
반도체(半導體, semiconductor)란 전기가 통하는 도체와 전기가 통하지 않는 부도체의 중간단계 물질로, 대표적인 반도체 물질에는 규소 즉, 실리콘(Si)과 게르마늄(Ge)이 있다. 반도체를 만드는 순수한 규소 결정의 경우에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체이지만 여기에 열, 빛, 자장, 전압, 전류 등 약간의 불순물을 넣어 주면 상황에 따라 도체나 절연체가 될 수 있는 반도체가 되는 것이다.
2015년 6월 24일 미래창조과학부에서 광복 70년을 맞이해 광복 이후 국가 경제발전을 견인해 온 과학기술의 역할을 조명하기 위해 ‘대표성과 70선’을 선정해 공개했는데, 1980년대 성과에 ‘디램(DRAM) 메모리 반도체’ 개발이 포함되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IT 강국으로 만드는 데 반도체가 큰 기여를 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최근 과학자와 공학자들은 투명하면서도 휘어지는 반도체를 개발 중에 있다. 옷이나 시계처럼 착용이 가능한 ‘웨어러블 컴퓨터’(wearable computer)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평면 세계에서 곡면 세계로 진입하는 웨어러블 컴퓨터가 상용화되는 그때는 시커먼 돌덩이인 규소가 만들어낸 ‘규석기시대’를 넘어선 또 다른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다.
반도체가 산업사회에서 본격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1950년 이후부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65년 처음으로 반도체소자가 생산되었다. 미국의 고미그룹이 국내에 합작투자회사를 설립하여 트랜지스터를 조립, 생산한 것이 시초였다. 그 후, 모토롤라(Motorola) 등 여러 외국 업체가 국내의 저렴한 인건비와 유능한 기능 인력을 이용해 반도체를 단순조립하기 위해 계속 들어왔는데, 이것이 우리의 반도체산업을 신장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1974년 삼성반도체통신주식회사의 전신인 한국반도체주식회사가 설립되어 국내 기업에 의하여 처음으로 손목시계용 IC칩과 트랜지스터칩 등을 개발, 생산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국내 반도체산업은 큰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우리나라의 전자손목시계가 세계시장에서 수위를 차지하면서 국내에서도 반도체산업의 주축을 이루는 실리콘 중심의 IC산업발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삼성전자는 1970년대 초반 세계 오일 파동으로 경영난을 겪자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하이테크산업에 진출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다. 이병철 당시 삼성전자 회장은 전자 부문을 살릴 수 있는 길은 핵심 부품인 ‘반도체 자급’이라고 판단, 1974년 12월 주변의 만류에도 사재를 털어 파산 직전에 몰린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이미 반도체산업이 성장궤도에 오른 미국과 일본보다 27년이나 늦은 출발이었다. 삼성전자는 한국반도체를 반도체사업부로 흡수했지만, 자체 기술이 없어 난항을 겪으며 자본금만 날리는 그룹의 미운 오리새끼가 되었다. 1982년 반도체와 컴퓨터 사업팀을 조직하고, 본격적인 시장조사에 들어갔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3년 안에 실패할 것이다.’, ‘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최첨단산업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 등 재계의 반대 여론과 업계의 냉소가 뒤따랐다.
일반적으로 반도체사업은 인구 1억 이상, GNP 1만 달러 이상, 국내 소비 50% 이상이 되어야 가능한 사업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 우리는 이 가운데 하나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실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은 반도체가 나라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산업이라 확신했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메모리제품 64K D램 기술 개발에 착수하였다. D램은 당시 세계적으로 수요가 가장 많고 표준화된 제품이었지만 경쟁사도 많았고, 반제품을 들여다 가공하고 조립하는 당시 우리의 기술 수준에서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은 ‘D램을 하지 않는 것은 싸워보기도 전에 항복하는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를 내보이며 개발을 강행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1983년 12월 1일 개발에 착수한 지 6개월 만에 309개 공정을 자력으로 개발하고 웨이퍼를 생산라인에 투입하며 국내 최초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우리도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64K D램은 2013년 문화재청이 산업 역사로서 그 가치를 인정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삼성은 1992년에는 ‘64M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메모리 강국인 일본을 추월했고, 1994년에는 256M D램, 1996년에는 1GB D램 등 연달아 세계 최초 모델을 내놓으며 차세대 반도체시장을 주도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비메모리 분야인 시스템 반도체를 신 성장 동력으로 삼았다. 반도체 산업은 일자리 창출과 국가 이미지 제고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고부가 산업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삼성전자가 1976년 시계용 칩을 생산했을 당시 첫해 매출은 400만 달러 초반이었지만, 2012년에는 300억 달러를 훌쩍 넘겼다. 30여 년 만에 매출이 7천 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 조사에 따르면, 2012년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미국의 인텔이 491억1400만 달러로 1위, 삼성전자가 322억51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일본을 제치고 2위에 올랐다. 또한 삼성전자는 1993년부터 2014년까지 21년 동안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시장 점유율 1위를 확고부동하게 유지해오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시장 점유율 20%로 2위를 차지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한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시장 점유율은 무려 70%로, 사실상 전세계 메모리반도체시장을 독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은 만약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 메모리반도체의 수출을 전면 중단한다면, 전세계 국가들의 재앙이 될 수도 있다고 언급할 정도이다.
우리나라의 반도체산업은 이처럼 양적으로는 발전했으나 진정한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높여야 한다. 세계 반도체 시장규모를 보면 비메모리 반도체가 70%, 메모리 반도체가 30%를 차지하는데 우리는 이 중 메모리 분야의 점유율이 50-60%, 비메모리 분야에선 5% 정도를 차지할 뿐이다. 비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위성통신, 이동체 통신 같은 정보통신 단말기기 등 쓰임새도 워낙 다양하고, 핵심기술만 있으면 경쟁자가 쉽게 따라올 수도 없기 때문에 앞으로는 이 분야의 개발·생산에 주력할 과제가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