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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있어서 광화문이란  광화문

조선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太祖 李成桂)가 한양으로 도읍을 정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경복궁을 만드는 일이었다. 경복궁을 만들면서 광화문도 생겨났다. 그런 점에서 좁은 의미에서 광화문이라 함은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법궁(法宮)인 경복궁의 정문(正門)을 가리키지만, 넓게는 행정구역과는 상관없이 광화문과 광화문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으로 볼 수 있다. 어느 시인이 노래했던 것처럼 광화문은 육백년이 넘는 세월동안 지금도 북악(北岳)과 삼각(三角)이 뒤편에 오누이처럼 그 자리에 있다.

  • 광화문 준공식(1968, CET0021197(18-1)) 참고 이미지
  • 광화문 준공식(1968)
  • 광화문 전경(1972, CET0043382(1-1)) 참고 이미지
  • 광화문 전경(1972)
  • 중앙청 앞 광화문 전경(1974, CET0034084(1-1)) 참고 이미지
  • 중앙청 앞 광화문 전경(1974)

경복궁 광화문의 변천사

광화문(光化門)은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법궁인 경복궁의 정문이다. 경복궁의 동서남북을 둘러싸고 있는 4개의 대문 중 남쪽에 위치한 광화문은 경복궁과 함께 조선 건국 직후인 1395년(태조 4년) 건립됐다. ‘광화문’이라는 이름에 대한 기록은 태조실록 8권 태조 4년 29일 6번째 기사에 나온다. ‘동문은 건춘문(建春門)이라 하고, 서문은 영추문(迎秋門)이라 하며, 남문은 광화문(光化門)’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경복궁은 1592년 임진왜란 중에 소실되었으며, 이때 광화문도 함께 소실되었다. 이후 270여 년 동안 재건되지 못하다가 1865년(고종 2년) 왕실의 존엄성을 과시하고자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광화문도 함께 복원되었다. 경복궁 중건은 1868년에 사실상 공사가 마무리되었으며 1885년 고종이 경복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1895년 일본군 등이 경복궁에 침입해 옥호루에서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지르게 되자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하였고 1년 후에 경복궁이 아닌 경운궁(慶運宮, 덕수궁)으로 환궁하여 경복궁은 방치되었다.

일본은 대한제국의 국권을 빼앗자마자 조선왕조의 권위를 상징하는 궁궐 파괴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빈 궁궐로 남아 있던 경복궁이 첫 번째 대상이었다. 조선총독부는 1915년 9월 11일부터 50일간 전국의 물품을 수집·전시한 대대적인 박람회인 ‘시정 5주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를 개최하였다. 이 과정에서 박람회 부지 마련을 위해 수많은 전각(殿閣, 궁궐)을 헐어버리고 부지를 파헤쳤다. 박람회가 끝난 후 조선총독부는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건립하기로 결정하고 1925년에 준공한다. 조선총독부는 광화문이 조선총독부 청사를 가린다는 이유로 광화문을 없애려 하였으나 극심한 반대 여론에 부딪히자 마지못해 경복궁 동편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 놓았다.

광화문은 1950년 6.25전쟁 때 포탄을 맞아 문루(門樓)는 소실되었고 석대(石臺) 및 석축(石築)만이 남게 되었다. 1967년 11월 5일,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1968년 석축 윗부분을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경복궁 정면에 다시 세웠다. 이때 원래의 한문 현판이 아닌 박정희 대통령이 쓴 '광화문'이라는 한글 현판이 걸렸다. 그런데 정확한 고증 없이 복원한 탓으로 조선총독부 건물과는 일직선이지만 근정전과는 축이 뒤틀린 모습으로 세워졌다. 옛 총독부 건물이었던 중앙청은 경성부청(현 서울시청), 남산 신궁과 일직선상에 놓이도록 건축되었는데 이를 기준으로 하여 광화문을 복원하였기에 근정전의 중심축과는 3.75도 틀어진 채였다. 더욱이 도로 문제로 인해 원래 광화문이 서 있던 위치에서 북쪽으로 11.2m, 동쪽으로 13.5m 벗어나 있었다.

광화문 복원공사 기공식(1968, BA0774178(27-1)) 참고이미지
광화문 복원공사 기공식(1968)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은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겨레의 정궁 경복궁 복원’ 사업을 진행하였다. 이때 광화문과 근정전 사이에 끼어 있던 구 조선총독부 건물은 철거되었으나 광화문에 대한 재복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6년, 조선 고종 때인 1865년 중건된 경복궁 모습으로 복원하는 ‘경복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광화문이 철거됐고, 제65주년 광복절이었던 2010년 8월 15일 복원됐다. 2006년 12월 시작되어 완공까지 3년 8개월이 걸린 광화문 복원공사에는 총 280억여 원이 투입되었다. 광화문 복원에서 특히 주목할 만 한 점은 원래 광화문이 위치해 있던 자리로 복귀했다는 사실과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원형의 목조 건물로 되돌렸다는 점,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를 사용했던 '광화문' 한글 현판을 1865년 고종 중건 때의 공사감독관이자 훈련대장이었던 임태영(任泰瑛)이 쓴 한문 현판으로 되돌렸다는 점 등이다.

광화문 앞에는 사악함을 물리치고 화기를 눌러 화재를 막아주는 영물로 여기는, 상상의 동물 해치 조각상 2개를 두었다. 1968년 복원 시에는 생략되었던 월대(月臺)도 도로 문제로 인하여 1865년 중건 당시 수준으로는 복원하지 못하였으나 좌우 난간을 일부 복원하여 궁궐의 위엄을 되살리도록 하였다.

광의의 광화문, 어디서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일까

광화문은 네 가지의 길로 이루어진 공간이다. 조선의 한양천도와 함께 가장 큰 길로 만들어져 사용되던 세종로와 종로,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통치하에 새로 만들어진 신작로인 태평로와 신문로가 광화문 사거리에서 만나고 있다. ‘광화문’은 행정구역으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광화문 사거리를 둘러싼 생활문화권을 지리적 공간으로 본다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세종로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과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상징하는 왕복 10차선 규모의 중심도로로서 길이 600m, 너비 100m이다. 세종로는 조선시대에도 한성부(漢城府, 조선 왕도 수도의 행정 구역 또는 조선 왕조 수도를 관할하는 관청의 명칭) 대로로 가장 넓은 길이었는데 주요 관아가 길 양쪽에 있다 하여 ‘육조(六曹) 거리’로 불렸다. 1912년 일제가 〈경성시구개수예정계획〉에 의해 29개 노선을 고시할 때 길 너비가 53m로 정해지면서 축소되었다가 광복 후 1952년에 현재의 너비로 확정되었다. 종로 또한 조선 초 한양천도 시점부터 중심가로 정해져 가장 넓은 대로였으나, 일제에 의해 1912년 28m로 좁혀졌다가 1945년 광복 이후 지금의 폭으로 확장되었다.

태평로는 폭 50m, 길이 1,600m이며 강북에서는 세종로 다음으로 넓은 길이지만,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좁은 도로에 불과하였다. 1912년에 노폭 27m로 정하고 시공한 신작로이다. 1936년에 이 길의 폭은 34m, 길이 800m로 하여 광화문 네거리~태평로~남대문 구간이 정해졌다. 신문로 역시 일제에 의해 1915년 3월 너비 27m으로 넓혀진 신작로이다.

광화문 광장

  • 건군 제46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 광화문 시가 행진(1994, DET0051075(22-1)) 참고 이미지
  • 건군 제46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 광화문 시가 행진(1994)
  • 새천년 광화문 축제의 풍경(1999, DET0058661(6-1)) 참고 이미지
  • 새천년 광화문 축제의 풍경(1999)

1996년 12월,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이 개통되면서 만성적인 교통체증으로 도심 진입이 어려웠던 시민들이 편리하게 광화문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더욱이 2009년 8월 1일 광화문 광장이 개방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서울의 명소가 되었다. 광화문 광장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광화문에서 세종로사거리와 청계광장으로 이어지는 세종로 중앙에 길이 557m, 너비 34m로 조성된 광장으로 2008년 5월 27일 착공되었으며 2009년 8월 1일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600여 년 역사를 지닌 서울의 중심거리 세종로를 차량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공간으로 전환하고 경복궁과 북악산 등 아름다운 자연경관의 조망 공간으로 새롭게 조성하고 세종로의 옛 모습인 육조(六曹)거리 복원을 통한 역사·문화 체험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사업이었다.

광화문 광장은 청계천광장, 서울광장과 함께 합법적인 집회를 열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광화문에 얽힌 이야기들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야기되고 기억될 것이며 지금도 그곳에서는 새로운 역사가 쓰이고 있다.

(집필자 : 조정미)

참고자료

  • 「경복궁 가이드북」, 문화재청, 2018.
  • 두산백과 (http://www.doopedia.co.kr)
  • 서울지명사전,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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