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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의 혁명, 시민의 발

1974년 8월 15일 오전 11시. 지하철역 청량리에서 큰 행사가 열릴 예정이었다. 이날 조간신문들은 일제히 지하철 개통을 축하하는 사설과 기사를 실었다. 1971년 4월 12일 지하철 1호선 기공식이 있은 지 3년 4개월 만인 이날 청량리 지하철역에서 개통식을 한 뒤, 108호 열차가 청량리에서 서울역 사이를 운행 예정이었다. 영국 런던에서 시작된 세계 최초의 지하철 개통 후 약 110년 만의 일이다.

대중교통의 혁명이라는 수식어로 표현되며 국민적인 관심사가 되었던 서울지하철의 등장은 1970년대 대한민국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이날 첫 출발을 했던 지하철은 지하 15m 땅속을 달려 청량리에서 서울역까지 7.8㎞를 18분 만에 주파했다. 당시 기술력으로는 획기적인 일이었으며, 이 지하철 1호선 개통으로 한국은 일본, 중국에 이어 아시아에서 3번째로 지하철을 보유한 나라가 되었다.

서울시 지하철 순환선 건설
서울시 지하철 순환선 건설(1975)

지하의 역사를 새로 쓰다

지하철의 역사는 193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춘철도주식회사는 현재의 서울 지하철 1호선과 거의 동일한 구간인 제기에서 동대문까지의 구간을 지하철로 건설해 경춘선과 연계하는 것을 계획했으나 총공사비 약 500만 원의 예산이 부족하여 실행되지 못했다. 그 후, 지하철 건설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이다. 1960년 센서스에 따르면, 서울의 인구는 244만 5,402명이었는데, 1970년에는 두 배가 넘는 552만 5,262명으로 증가하였다. 이렇게 서울로의 인구가 집중된 것은 전후 베이비붐으로 인해 인구 자체가 증가했으며 농촌인구의 탈농촌화 및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은 더 많은 주택과 식수, 출퇴근과 통학을 위한 도로, 그리고 대중교통 수단이 절실하게 요구되었다. 이에 1968년 서울시는 도로교통 체증이 심각해지자 서울의 전차를 없앴다. 그리고 새로운 대중교통수단을 모색하게 되었는데, 보다 많이, 보다 빠르게 사람들을 수송할 교통수단이 필요했고, 그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주는 대중교통수단이 지하철이었다.

서울시 지하철 종로선 개통 썸네일 이미지
서울시 지하철 종로선 개통(1974)
지하철 개통식 참석자 시승 썸네일 이미지
지하철 개통식 참석자 시승(1974)
지하철 개통식 참석자 테이프 절단 썸네일 이미지
지하철 개통식 참석자 테이프 절단(1974)

지하철의 잠재력에 대해 확신이 있었던 양택식 서울시장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첫 시정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지하철 건설본부 설치 등 지하철 건설을 준비하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의견은 지하철 건설에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며 지하철 건설 시 오히려 서울로의 인구집중이 더 심화될 것을 우려하는 경제기획원장의 반대에 부딪쳤다. 이렇듯 찬성과 반대의견 때문에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이후락 주일대사가 선진국의 사례를 들어 서울에도 지하철 건설이 시급하다는 의견을 내놓자 지하철 건설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에 따라 서울지하철 건설본부가 설치되었고 다각적인 조사를 거쳐 지하철 및 수도권 전철계획을 발표하였다. 이 계획은 서울역∼종로∼청량리를 잇는 9.8km 구간에는 지하철을 건설하고, 서울역∼인천, 서울역∼수원, 용산역∼성북 구간은 기존 철도를 전철화하여 지하철과 연결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계획에 따라 1971년 4월에 지하철 건설이 시작되었다.

1호선은 국내의 토목과 건축 기술에 일본의 차량 및 신호 분야의 기술과 자본을 활용하여 건설하였다. 종로∼청량리 구간 공사에는 지상에서 땅 속으로 파들어 가는 개착식 공법을 썼는데 터널식으로 파는 것보다 공사비가 적게 들고 공사기간도 단축된다는 이점은 있었지만, 교통 혼잡을 초래하여 시민에게 큰 불편을 주었다. 난공사 구간도 여러 곳이었다. 남대문과 동대문 공사구간에는 진동으로 인한 문화재 훼손을 막기 위해 수입 콜크로 방진벽을 만들었고 거의 90도로 꺾이는 광화문에서 시청쪽 방향 공구에는 특수공법이 도입됐다. 양택식 서울시장은 지하철 건설 기간 내내 공사현장을 누비고 다녀 '두더지' 시장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공사 진척은 빠르게 진행됐고 최초 계획대로 1974년 8월 15일 청량리에서 서울역까지 서울 지하철 1호선 및 청량리에서 성북 그리고 서울역에서 인천, 수원까지 기존 철도의 전철화가 완성되었다. 더운 여름에 개통을 한 첫 지하철의 냉방 시설은 천장에 달린 선풍기가 고작이었지만, 수도권 지역으로 사통팔달 연결되어 이용객들이 많아지면서 서울 지하철 1호선은 ‘지옥철’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서울 지하철역 전경 썸네일 이미지
서울 지하철역 전경(1975)
지하철역 전경 썸네일 이미지
지하철역 전경(1976)
부산지하철 제1호선 1단계 구간 개통식 모습 썸네일 이미지
부산지하철 제1호선 1단계 구간
개통식 모습(1985)

1974년 첫 지하철이 개통된 이래 4호선이 건설될 때까지 서울 지하철은 실제로 대부분이 지하 구간이었기 때문에 ‘지하철’이라는 이름이 적합하였다. 그러나 지상 구간이 주를 이루는 광역철도가 빠르게 구간을 확장하면서 1994년 설립된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가 기존의 ‘지하철’이라는 명칭 대신 ‘도시철도’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이제는 지하철, 도시철도라는 말이 같이 쓰이고 있다.

세계의 지하철로 우뚝 서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이 힘차게 달린지 10여 년 후인 1984년 서울의 강남과 강북을 한 바퀴 도는 2호선이 개통됐다. 당초 이 노선은 서울시의 지하철 건설 및 수도권 전철화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서울의 도심기능을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구체화되었다. 2호선에는 전동차량에 냉난방 시설이 갖춰졌다. 지하철 건설 공사는 계속돼 1985년 10월 3, 4호선이 완전 개통되어 본격적인 지하철 시대가 열렸다. 서울의 동서를 관통하는 5호선, 한강 이북 지역을 동서로 연결하는 6호선, 서울의 온수역에서 도봉산역을 지나 경기도 의정부시의 장암역을 잇는 7호선,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모란역에서 서울 강동구 암사역 구간의 8호선, 서울 강남구 일부 구간을 포함하는 9호선 등이 운행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에도 지하철이 운행되고 있어 울산광역시를 제외한 모든 광역시에 지하철이 운행되고 있다.

[대한뉴스 제1550호] 부산지하철 개통(1985)
[대한뉴스 제1550호] 부산지하철 개통(1985)

2009년 기준으로 서울 지하철의 연간 수송인원은 22억 6,000만 명으로 도쿄 29억 명, 러시아 모스크바 25억 명에 이어 세계 3위이며, 지하철역 개수 또한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에 이어 세계 3위이다. 운행거리도 312㎞로 세계 4위에 해당한다. 대부분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해외 선진 지하철과 비교할 때 우리의 지하철은 약 40여 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가졌지만, 승객 수송능력과 노선의 길이 등에서 세계상위에 오를 만큼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했다. 뿐만 아니라 지하철과 관련된 기술력도 세계적이 되었다. 지하철은 토목공사, 궤도부설, 건축, 전기, 신호, 통신과 기계, 설비 및 차량의 각종 공학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고도의 복합 기술력이 집대성되어야 한다. 이런 기술이 없었던 초기에는 철도 선진국의 다양한 기술과 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했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지하철 기술수준은 전 분야에 걸쳐 국산화 비율이 95%이상이 될 정도로 높아졌다.

여름이면 창문을 반쯤 내린 채, 천장에 달린 선풍기에서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던 낡은 지하철 차량들은 이제 사라졌다. 에어컨은 기본이고, 찬바람이 싫은 사람들은 약냉방칸을 이용하면 된다.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으로 천으로 덮여 있던 좌석도 2006년부터 불연성 소재로 교체되었다. 안전을 위한 스크린 도어가 설치되어 있어 플랫폼에서 지하철이 드나들 때마다 뿜어내던 후텁지근한 바람을 맞을 일도 이제 사라졌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시간이면 차량 안으로 승객을 밀어 넣는 승차도우미도 있고, 여성전용차량을 따로 정해 놓았으며 지하철 보안관이 수시로 불량승객을 감시, 감독하고 있다. 변화 발전하고 있는 우리 지하철은 여전히 가장 친근한 서민의 발이다.

(집필자 : 황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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