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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스타일’은 언제부터? 강남개발

최근 ‘강남스타일’이란 노래가 유행하면서 우리나라의 강남도 덩달아 알려져 한국하면 강남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보다 더 유명해진 강남은 언제부터 강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을까? 요즘 젊은 사람들은 강남이 예전부터 번화가였다고 생각하겠지만, 알고 보면 강남은 불과 40여 년 전만 해도 논밭과 과수원이 즐비한 농토였다.

인구밀집지역 강북의 대안, 강남

강남이 오늘날과 같이 개발되기 전 행정구역은 경기도 광주였다. 이 지역은 오랫동안 농업지역이었고, 때로는 한강의 범람으로 침수가 잦은 지역이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강남은 왜, 그리고 언제부터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일까?

제3한강교 강변도로 항공촬영 참고 이미지
제3한강교 강변도로 항공촬영(1970)
말죽거리 택지 참고 이미지
말죽거리 택지(1973)

강남 개발의 이면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들이 얽혀 있었지만,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늘어나는 서울 인구의 분산이었다. 1970년대 한국 경제는 연평균 10%를 웃도는 경제성장을 기록하였다. 이에 발맞추어 급속도로 도시화․산업화가 진행되었다. 그 가운데, 서울로 유입되는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기존의 서울 도심은 늘어나는 인구를 모두 다 수용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곳곳에 판자촌이 형성되는 등 도시의 경관은 나빠지고, 시설은 나날이 낙후되었다. 정부는 서울의 늘어나는 인구 문제를 신도시 개발을 통해 해결하려 했고, 이러한 목적 하에서 강남 개발이 정책적으로 추진되었던 것이다.

정책적 강남 개발

강남 개발이 처음 시도된 것은 1963년이었다. 이때부터 강남은 강북의 과밀한 인구를 분산 시킬 장소로 검토되었지만, 행정적으로 경기도 광주에서 서울시로 편입된 것에 그쳤을 뿐, 별다른 개발이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이후 1968년 1월 21일 북한에서 김신조 등 무장 공비가 내려오면서 안보에 대한 불안이 높아지고 북한의 도발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해 보이는 한강 이남지역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였다. 이로써 강남 개발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본격적인 강남개발 이전에 강변을 정비하는 작업을 1968년부터 시작하여 여의도를 정비하고 강변도로를 건설하였다.

1971년-강남개발 참고 이미지
1971년-강남개발(1994)

현재의 강남 개발은 1970년 11월 양택식 서울시장이 발표한 남서울 개발계획에 의해 그 윤곽이 잡혔다. 남서울 개발계획은 영동지역에 60만 명이 거주할 신시가지를 개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효과적인 인구 유치를 위해 한국전력 등 당시 국영기업을 입주시킬 계획을 세우고 정부의 종합청사 일부를 강남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하고, 새 청사를 짓고 근무인원을 수용할 주택용지를 확보하였다.

학교 시설도 대거 이동하였는데, 강북의 유수한 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서울교육대학 등이 이전하였다. 고등학교의 이전은 영동지역 개발을 부추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교육열이 높은 한국의 부모들은 우수한 고등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해 사회 제반 시설이 채 갖추어지지 않은 강남으로 이사를 감행했다. 이른바 8학군의 탄생이었다.

강남의 인구가 늘면서 강남과 강북 간 교통문제가 발생했는데, 이는 지하철과 다리 건설을 통해 해결해나갔다. 방사형으로 계획되어 있던 지하철 건설을 강남개발을 위해 이례적으로 순환 노선으로 변경하여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었고, 강남과 강북을 연결하는 27개의 교량이 건설되면서 영동지구는 서울의 ‘신천지’로 부상했다. 여기에 더해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고 정책적으로 강남에 고속터미널을 건설함으로써 강남은 전국의 각 지방을 아우르는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지하철 2호선 완전 개통 참고 이미지
지하철 2호선 완전 개통(1982)
강남종합버스터미널 현황 보고 참고 이미지
강남종합버스터미널 현황 보고(1977)

강남의 탄생

그렇다면, 강남이란 지명은 언제부터 사용된 것일까? 1960년대 말 당시 한강 이남에서 유일하게 개발되어 있던 지역은 일제강점기 때 개발된 영등포였다. 그래서 현재 강남 지역은 영등포의 동쪽이라 하여 '영동'이라고 불렸다. 그러던 것이 강남 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1975년 행정적으로 성동구에 소속되었던 한강 이남지역이 강남구로 독립되어 비로소 강남이라는 지명이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88년에는 강남구에서 서초구와 송파구가 분리되었다.

개발 초기 강남은 독자적인 생활기반 시설이 극히 부족하고 절대적으로 강북 의존적인 베드타운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유수한 교육시설의 이전을 통한 ‘강남 8학군’ 조성과 당시 정부의 ‘강북 억제, 강남 개발’ 정책이 실효를 거두면서 강남은 1980년대 이후 한국과 서울의 성장 바로미터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한때 ‘아직도 강북에 사십니까?’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강남의 인구유입은 급물살을 탔다. 1970년부터 1999년까지 서울의 인구는 550만 명에서 1,030만 명으로 늘어났는데, 그 가운데 강북 인구가 430만 명에서 520만 명으로 1.2배 정도 증가한 데 비해, 강남 인구는 120만 명에서 510만 명으로 4.2배 증가했다.

강남은 1968년부터 1988년 서울올림픽 직전까지 정부의 정책적인 개발로 눈부시게 성장하였다. 그리고 이후 강남은 정부의 개발정책 없이도 독자적으로 성장을 거듭해 최근에는 한국 경제의 심장부로 부와 권력과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집필자 : 김정미)

참고자료

  • 국가기록원,『기록으로 보는 생활사』, 국가기록원, 2007.
  • 이영석, 민유기,『도시는 역사다』, 서해문집, 2011.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http://www.grandcultur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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