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도복에 검정띠를 묶고 절도있는 기합과 품새를 선보이는 태권도는 이제 한국 사람들만의 무예가 아닌 전 세계인의 스포츠가 되었다. 외국에서 오는 국빈 앞에서 단체로 태권도를 선보이는 어린아이들의 진지하고 귀여운 모습과 세계 곳곳에서 ‘얍얍’하며 발차기를 따라하는 외국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뿌듯함과 감동까지 느껴진다.
태권도의 연원에 대해선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영고, 동맹, 무천 등의 원시종교의식 때부터 시작된 행위가 발전하여 전통무예로 이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지금의 태권도가 완성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고, ‘태권도’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광복 이후로 보는 시각도 있다.
태권도의 연원을 고대로부터 본다면, 고대 고분벽화나 불상, 문헌들에서부터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현재 만주 집안현 통구에 있는 무용총 벽화가 대표적인데, 벽화에 그려진 두 사람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마주보며 손·발로 상대를 공격하는 듯 서있는 모습과 석굴암의 금강역사상이나 분황사 9층 석탑 인왕상 등의 몸동작은 태권도의 경기 동작이나 품새와 유사하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수박희(手搏戱)’라는 무술이 자주 언급되는데, 수박희는 삼국시대부터 행해지던 택견이 체계화 된 무예로서 수박희를 잘 하는 무관을 승진시키기도 하고, 왕이 직접 수박희 경기를 관람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도 수박희가 계속 성행하여 수박희로서 인재를 시험하여 뽑기도 하고, 왕이 관람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민족말살 정책과 무장 항일운동에 수단으로 사용될 것을 우려하여 무예수련을 금지하였으나, 태견의 명맥은 이어졌다.
광복 이후 우리의 태권도를 찾고자하는 이들이 후진을 양성하기 시작하고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해 각종 대회를 개최하다가 1961년 9월 16일 대한태권도협회를 창설하였다. 그 후 1963년 2월 대한체육회에 가입하였고, 10월 전주에서 개최된 제44회 전국체전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1971년에는 태권도의 우수성과 가치를 인정받아 국기(國技)로 정해지고, 1972년에는 태권도중앙도장 겸 시합장인 국기원을 개원하였다. 1973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19개국의 대표들이 세계태권도연맹을 창설하였고, 이후 국제태권도대회에서 우리나라는 태권도의 우수성과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보여주었다.
1980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는 태권도를 승인 종목으로 인정하였으며, 1986년 제10회 서울아시아경기대회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태권도는 1988년 서울 올림픽과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에서 시범경기로 채택되어 경기를 치룬 후, 2000년 시드니 올림픽대회에서 정식 경기종목으로 채택되어 명실상부한 세계의 스포츠가 되었다.
태권도의 기술체계와 운동형태의 특징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손기술과 발기술만 이용하는 것이고, 위력적이고 다양한 발기술은 태권도를 세계 최강의 투기라고 할 수 있는 차별성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태권도는 상대에 대한 공격이 목적이 아니라 공격에 대한 적극적 방어에 주목적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방어를 우선으로 하는 태권도는 평화와 공정성을 정신적 기반으로 하며 이를 통해 인내심과 예절교육, 정신수양, 자기 극복의 태도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렇듯 기술의 습득과 더불어 정신의 수련까지 갖춰져야만 진정한 ‘태권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