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이후 폐허가 된 우리 국토의 모습과 요즘의 모습을 비교하면 상상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광복 당시 45달러에 불과했던 국민소득이 2015년에는 2만 7,000달러, 2016년 정부 R&D 예산 12조 6,380억 원 등 세계 11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국가로 초고속 성장하였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은 많은 사람들의 땀방울로 일구어낸 결과였다. 그리고 이 비약적인 발전 과정에서 강력한 엔진을 갖고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 국책은행 중의 하나인 산업은행이다. 국책은행은 일반은행이 갖고 있는 여러 제약 때문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지 못하는 부문에 대해 자금을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 정부가 만든 은행이다.
6.25전쟁 직후 우리나라는 최빈곤국이었다.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경제개발 뿐이었다. 이렇듯 절실하게 경제개발이 필요했지만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얻을만한 곳도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외자에만 기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정부는 산업자금 조달을 전문으로 하는 은행을 만들고 이 은행을 통해 주요 산업자금을 관리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러나 광복 후 일본 금융권의 일부분으로만 존립했던 우리나라 금융권은 단기 상업 금융 업무만으로 그 명맥을 유지할 뿐 장기 산업 금융의 기능은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전후 경제복구를 위한 금융기관으로 1918년 이후 존속하여 오던 조선식산은행을 승계하기로 하였다. 조선식산은행은 동양척식주식회사와 함께 일제의 식민지 경제 지배를 했던 곳이다. 조선식산은행은 대한제국 말기에 설립된 한성농공은행 등 6개의 농공은행을 합병해 설립되었으며 전시 체제 속에 채권 발행과 강제 저축을 통해 조선의 자금을 흡수했다. 그리고 이 자금을 일본 정부와 전쟁 수행을 위한 군수산업 부문에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정부는 전후 복구 사업을 지원할 산업금융기관의 설립을 위해 1951년 5월 당시 임시수도 부산에서 「한국산업은행법」의 기초에 착수하여 그 해 10월 법안을 국회에 회부하였다. 그러나 이 법안은 전쟁으로 인해 심의가 보류되었다가 휴전 후인 1953년 11월 국회를 통과하여 그 해 12월 공포되었다. 「한국산업은행법」은 총 6장의 전문 54조와 부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업의 개발과 국민경제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중요 산업 자금을 공급·관리하는 한국산업은행을 설립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법안은 2002년 3월까지 15차례 개정되었다. 1954년 의결기관인 이사회와 집행책임자인 총재를 중심으로 하는 직제구성이 완성되었으며, 정부출자금 1,000만 원 납입을 완료함으로써 1954년 4월 산업은행이 발족하게 되었다.
정부가 100% 지분을 보유한 순수 정부은행인 산업은행은 정부의 신용을 바탕으로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여 6.25전쟁으로 피폐해진 경제의 부흥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제 역할을 했다. 우선 산업은행은 정책 금융과 기업 대출 등을 담당하는 국책은행으로의 역할을 했다. 특히, 정부의 경제개발 정책에 따라 사회간접자본이나 중화학공업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대출하는 것을 주요 업무로 하였다. 이렇게 해서 비료·시멘트·판유리 등 3대 산업을 비롯하여 6.25전쟁으로 피해가 컸던 발전 부문의 복구 등을 중점적으로 지원하였다. 이 밖에 화학·제철·수리·광업·기계 부문과 주택 부문 등 광범한 분야에 걸쳐 자금을 공급하여 국민경제 규모를 급속도로 확대시켰다. 초창기의 산업은행은 전후 복구를 위해 우리 경제가 자립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산업기반을 구축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는데, 그 일환으로 1955년 원화 산업금융채권을 발행하기도 했다. 산업금융채권는 「산업은행법」에 따라 국가 주요산업의 재원조달을 위해 출시한 특수채권으로, 1955년 2월 첫 발행 이후 지금까지 판매되고 있는 우리나라 최장수 무기명 채권이기도 하다.
전후 복구 단계를 거쳐 경제개발계획의 실시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산업은행의 기능과 역할이 배가되었다. 우선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외자도입을 위한 지급보증업무를 취급함으로써 개발계획의 수행에 필요한 외자를 민간 기업에 조달해주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 제2,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되는 동안 막대한 설비 자금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국민투자기금 대출 업무, 외국환업무의 확대 등으로 업무를 다양화해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에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특히, 이 기간에는 기계, 전자, 석유, 화학 등 중화학 공업에 집중적으로 자금을 공급하여 우리나라 수출산업의 기반 조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중화학공업의 건설을 위한 지원은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에도 계속되었다.
산업은행은 경제여건이 변화할 때 마다 그 기능과 체제를 변화하고 강화시키면서 중요 산업에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산업금융의 중추기관으로 성장하였다. IMF 외환위기 이후 국내 대기업이 휘청거릴 때마다 구원투수로 등장하여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시키고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을 회생시키는데 매진했다. 또한, 산업은행은 단순한 투자와 보증에 그치지 않고 사회간접자본(SOC),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국제금융, 지역개발, 남북경협, 자원개발 등 한국 경제에 숨결을 불어넣는 일을 해왔다.
산업자본 조달에 큰 역할을 했던 산업은행은 경제 규모가 커지고 금융산업이 발달하면서 그 역할이 점차 축소됐다. 따라서 정부의 민영화 방침에 따른 사전작업으로 2009년 10월 산은금융그룹(KDB금융그룹)의 자회사로 편입되어 KDB산업은행으로 새롭게 출범하였다. 이때 기존의 정책금융 업무는 한국정책금융공사로 이관되었고, 기업금융, 투자금융, 국제금융, 기업구조조정 및 컨설팅, 수신 및 개인금융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나 최근 전문적인 정책금융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산업은행의 민영화는 취소되었다. 산업은행은 정책 금융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으면서 2015년 1월 산은금융지주, 한국정책금융공사와 통합하면서 전문적인 정책금융공사인 통합산업은행으로 다시 출발했다.
산업은행은 1950년대 전후 경제 복구에 힘쓰던 개발 금융기관에서 1990∼2000년대에는 투자 은행 기능까지 수행하면서 한국경제를 측면에서 지원했다. 새롭게 탄생한 통합산업은행도 금융환경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정책금융 수요에 원활히 대응하고 금융산업 발전에 부응하는 등 정책금융의 중추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