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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시아드 대회는 세계의 대학생끼리 우호와 친선을 도모할 목적으로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이 2년마다 주최하는 범세계적 대학 운동경기이다. 이 경기대회의 원래 명칭은 ‘University Olympiad’였다. 1928년 파리에서 개최된 제1회 국제학생경기대회에서 비롯되었으나 1939년 제10회 빈 대회를 마지막으로 2차 세계 대전과 동서 간의 이념대립으로 인하여 한때 중단되었다. 그 뒤 1959년에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대회를 부활시키고 그 명칭을 유니버시아드 대회로 바꾸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대한뉴스 제1557호] 유니버시아드대회(1985, CEN0001519(11-1)) 참고 이미지
[대한뉴스 제1557호] 유니버시아드대회(1985)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올림픽대회와 마찬가지로 하계대회와 동계대회로 나누어 개최한다. 대학생의 경기인 만큼 경기 수준면에서 올림픽이나 세계 선수권 대회에는 미치지 못할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과거부터 의미가 큰 대회였다. 1966년 FISU 회원국이 된 우리나라는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통해 국제 대회 경험을 쌓는 것은 물론 다른 나라와의 스포츠 교류를 이뤘기 때문이었다.

1967년 동경유니버시아드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한 우리나라는 당시 117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1967년 동경대회에서는 여자농구가 금메달을, 남자배구·남자농구·유도에서 은메달 9개를 거머쥐며 메달 집계 11개를 기록하여 종합 10위를 장식했다. 이후 우리 선수들은 대회마다 참가하여 점차 향상되는 성적을 보여줬다. 1979년에는 남자배구가 금메달을 안겨주었고 1985년 고베대회에서는 유도 3개 체급에서 금메달과 동메달 5개를 획득하였으며 1995년 후쿠오카대회에서는 금메달 10개와 은메달 7개, 동메달 10개를 획득하여 종합순위 5위를 차지하였다.

  • 95 후쿠오카 유니버시아드대회 개막식 전경(1995, DET0052127(2-1)) 참고 이미지
  • 95 후쿠오카 유니버시아드대회 개막식 전경(1995)
  • 95 후쿠오카 유니버시아드대회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선수(1995, DET0052127(6-1)) 참고 이미지
  • 95 후쿠오카 유니버시아드대회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선수(1995)

1997년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개최된 제19회 대회에서는 금메달 5개, 은메달 2개, 동메달 5개를 획득하여 종합순위 9위를, 그리고 1999년 스페인 팔마에서 개최된 제20회 대회에는 10종목에 105명이 참가하여 금메달 3개, 은메달 4개, 동메달 9개로 종합순위 13위를 차지함으로써 한국 대학생들의 기량을 세계에 과시하였다.

우리나라가 가장 성적이 좋은 종목은 남자배구와 레슬링이었다. 남자 배구는 1967년 도쿄대회에서 은메달을 1970년, 1973년, 1977년 대회에서 동메달을 땄고 1979년 대회에서는 금메달을 땄다.

참가국에서 유치국으로

1988년 우리정부는 1993년 제17회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처음으로 유치신청을 하였다. 1989년 브라질(상파울루)의 개최 포기로 국제대학스포츠 연맹이 서울 유치를 요청해왔고 체육부는 서울 올림픽 시설을 활용하면 큰 투자 없이 개최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지만 브라질이 재정난으로 포기한 대회를 떠맡기보다 다시 정식 유치 신청을 해서 대회를 유치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2003년 제22회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대구광역시에서 개최되었다. 육상·농구·펜싱 등 13개 종목에 174개국 1만 천여 명이 참가하였고, 우리나라는 금메달 26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15개로 종합순위 3위를 차지하였다.

제22회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지원법(2001, BA0752078(2-22)) 참고이미지
제22회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지원법(2001)

2015년에는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광주광역시에서 개최되었다. 육상·농구·수영 등 21개 종목에 170여 개국 2만여 명이 참가하였고, 우리나라는 금메달 47개, 은메달 32개, 동메달 29개로 종합순위 1위를 차지하였다.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는 1960년 프랑스 샤모스에서 처음으로 개최하였고 우리나라는 1968년 처음으로 대회에 참가하였다. 우리나라 동계 스포츠는 시설이나 코치 시스템 자체가 미비했던 탓에 처음엔 경기 수준도 낮았다. 하지만 1972년 제7회 미국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열린 대회에서 빙상의 전선옥이 스피드 1,000m 경기에 출전하여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그 뒤 1989년 제14회 불가리아 소피아 대회에서부터 한국의 쇼트트랙이 부상하게 되었다. 그 주역이었던 쇼트트랙의 김기훈 선수는 1991년 제15회 일본 삿포로 대회에서도 500m, 1,000m, 3,000m, 5,000m 계주경기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며 대회 4관왕의 영광을 차지했고 우리나라는 종합순위 3위라는 큰 수확을 얻게 되었다.

1995년 스페인 하카에서 열린 대회에서 채지훈 선수가 4관왕을 차지하였고, 41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한국은 금메달 6개, 은메달 4개, 동메달 4개를 획득하여 종합순위 2위에 올랐다. 이 자신감으로 우리는 동계 대회유치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동계유니버시아드 유치를 위해!

1993년 전라북도는 2002년 동계올림픽 준비단계로 1997 동계 유니버시아드의 유치신청을 하였고, 국제대학스포츠연맹은 우리나라를 개최지로 확정했다.

1997무주.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기본계획(1993, BA0077501(1-1)) 참고이미지
1997무주.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기본계획(1993)

유치 당시엔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동계 국제종합경기대회였던 만큼 국제대회를 치를 만한 활강코스나 점프시설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당시 유일하게 대중용 슬로프를 갖춘 무주스키장 역시 경기시설로는 부적합하였다. 각종 경기장 건설부터 도로 등 간접시설이 신속하게 건설되어야 할 실정이었으나 재원 조달이 막막해 대회 유치 후 약 1년 동안 사업을 진행하지 못해 대회 유치 반납까지 우려되었다. 거기에 국제 규모 스키장 건설이 들어설 덕유산과 발왕산 정상 부군의 환경 파괴 문제가 불거졌다. 우여곡절을 딛고 1997년 열린 제18회 무주·전주대회는 빙상, 스키, 바이애슬론, 아이스하키 4개 종목에 50개국 2,600여 명이 참가했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5개, 은메달 2개, 동메달 5개로 종합순위 6위를 차지했다.

  • 97 무주·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막식(1997, DET0057842(16-1)) 참고 이미지
  • 97 무주·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막식(1997)
  •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폐회식(1997, DET0030509(8-1)) 참고 이미지
  •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폐회식(1997)

우리에게 유니버시아드 대회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훈련해 온 이들이 그 빛을 발휘하던 대회였다. 영화 '국가대표'도 2003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배경으로 한국 스키점프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전설이 된 최서우 선수와 김현기 선수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겁내지 마, 할 수 있어. 뜨겁게 꿈틀거리는 날개를 펴, 날아올라. 세상 위로~."영화의 주제곡인 러브 홀릭스의 <Butterfly>의 가사처럼, 유니버시아드 대회는 많은 선수가 자신들의 꿈을 향해 날아오르는 감동의 무대였다.

(집필자 : 최유진)

참고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encykorea.aks.ac.kr)
  • 「유니버시아드 대회 정식초청 접수」, 동아일보, 1966.08.12.
  • 「메달박스 레슬링」, 동아일보, 1981.07.29.
  • 「유니버시아드대회 개최 검토」, 한겨레, 1989.01.26.
  • 「겨울 유니버시아드대회 김기훈 4관왕…한국 종합3위」, 한겨레, 1991.03.10.
  • 「95하계 유니버시아드 한국 男 배구 16년 한 풀었다」, 동아일보, 1995.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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