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은 세계 문자 가운데 유일하게 만든 사람과 반포일, 그리고 글자를 만든 원리까지 알려진 고유문자다. 한글은 단순한 소리의 조합이 아닌 혀의 위치나 입술 모양 등 소리가 나는 원리까지 정확하게 파악된 최고의 과학적 언어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우주의 모든 현상-사람의 소리마저도 하나로 통일시키려는 철학사상이 배어 있는데, 하늘의 양과 땅의 음을 통하게 하였다고 한다. 세종 25년(1443년) 음력 12월에 28자가 창제되고, 세종 28년(1446년) 음력 9월에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반포된 ‘한글’은 그 중 4글자가 소멸되어 현재 24자가 쓰이고 있다. 한글은 음성학적으로 가장 함축적으로 구성되었고, 어느 한 시기에 창제되어 일시에 반포·사용된 점, 이후 약 600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사용돼온 문자라는 것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세종대왕이 만들었을 당시는 ‘훈민정음’으로 불렸던 한글은 여러 이름으로 불리어 왔다. 공식적인 이름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으로 줄여서 '정음'이라고도 하였다. 또, 한문과 달리 우리 토박이말을 적는 글자란 뜻으로 ‘언문’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언서', ‘반절’ 이라고도 불렀으며, 부녀자들이나 쓰는 글이란 뜻으로 낮추어 ‘암글’이라 부르기도 했고, 19세기말에는 민족주의 정신의 대두와 더불어 쓰이던 ‘국문’이란 이름으로도 불렸다. ‘한글’ 이란 이름은 주시경 선생이 1908년에 창설한 '국어연구학회'(한글학회의 전신)에서 1927년에 기관지인 『한글』을 펴내기 시작하면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한'은 '하나' 또는 '큰'의 뜻이니, 한국의 글자에 대해 권위를 붙여준 이름으로, '정음'이란 이름과 그 정신이 서로 통한다고 본 것이다.
백성들이 쉽게 익히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한글은 그 뜻에 맞게 습득하기 쉬운 언어이며, 자음 14개와 모음 10개의 조합으로 세상 모든 소리를 문자로 쓸 수 있는 우수한 언어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0.1%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것도 바로 이러한 한글의 우수성 덕분이다. 영국의 문화학자 존 맨(John Man)은 한글을 두고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고 했고, 『대지』를 쓴 작가 펄 벅(Pearl S. Buck)은 ‘한글은 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하며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찬사를 한 바 있다.
광복 이후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은 한글날 기념 담화를 통해 한글 간소화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름 하여 ‘한글 간소화파동’으로, 내용은 구한말 성경에서 사용했던 한글맞춤법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광복 후 한글맞춤법은 1933년 제정된 한글맞춤법 통일안에 의거해 바뀌었는데도 오랜 망명생활로 새로 변화된 한글에 적응하지 못한 이승만 대통령이 자신이 아는 구한말 맞춤법으로 돌아가자고 했던 것이다. 어떤 합리적인 정책 검토도 없이 정부 시책으로 채택된 것으로, 한글학자를 비롯한 여러 계층의 반대가 계속되었다. 한글간소화로 소비될 사회비용도 만만치 않아 한글철자법을 바꾸는데 각종 교과서의 갱신에만 5억 환이 소요되고, 재교육할 학생의 수가 3백30만 명에 육박한다는 추정이 나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정부는 「한글간소화안」을 정부 공문서의 공식 표기법으로 제정하고, 새로운 교과서 집필을 계획하는 등 방침을 포기하지 않아 6년에 걸쳐 논쟁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1955년 9월 19일 이승만 대통령은 갑작스럽게 담화를 통해 한글간소화정책을 포기한다고 발표하였다. 이유는 “현행 철자법이 이미 습관이 되어 고치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모양이고, 여러 사람들이 이것을 그냥 쓰고 있는 것을 보면 무슨 좋은 점이 있기에 그럴 것이므로 지금 여러 가지 바쁜 때에 이것을 가지고 이 이상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후에 이승만 대통령의 한글간소화 포기는 미국측 록펠러재단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고 추측하는 설도 있었다. 한글맞춤법을 주도하고 있던 한글학회에서 당시 록펠러재단의 지원으로 『우리말 큰사전』 편찬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광복 이후 한글 관련 정책을 크게 살펴보면, 1961년 5.16 이후에는 한자어추방정책이 나왔다. 1963년 문교부(현 교육부)는 「학교문법통일안」을 공포하였으며, 1973년 6월 「맞춤법통일안」을 시행하였다. 그 내용은 준히읗과 사이시옷의 폐기 등 이미 사문화된 규정의 폐기, 원형표기와 띄어쓰기의 축소와 같은 엇갈리는 문체의 규정화 등으로 집약된다. 한자문제는 신문에서 각기 제한한자를 사용하는 방침을 취하고, 교육에서는 기초한자 1,800자를 제정하여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한편,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에 대비하여 정부는 1985년 국어연구소를 발족, 국어 및 외래어표기 통일방안을 연구하여 1988년 1월 「표준어규정」과 함께 「한글맞춤법」을 고시하였다, 이로써 1989년 3월1일부터 새로운 맞춤법이 시행되었다.
1997년 10월 국보 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이 직접 서문을 쓰고 정인지 등 신하들에게 글자에 대한 설명을 적게 한 것이다. 1940년에 안동에서 발견된 이 책은 한글의 창제 원리를 적은 것으로 이 책을 통해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인 원리로 만들어졌는지 알게 되었다. 당시 간송미술관을 세운 전형필 선생이 비싼 가격으로 이 책을 사서 6.25전쟁 때에도 이 책 한 권만 들고 피난 갈 정도로 필사적으로 이 책을 지켰다는 설도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전권 33장 1책으로 발간됐는데, 한글창제가 상형원리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새 문자에 대한 해설을 책으로 출판한 것도 한글이 유일하지만 특히, 문자를 만든 원리와 문자사용에 대한 이론의 정연함과 엄정함에 대해서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높게 평가하고 있다. 현재 유네스코에서 문맹퇴치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세종대왕상’을 주는 것은 이 책의 문화사적 가치를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우수한 우리 한글을 문자가 없는 지구촌 소수민족들의 공식 문자로 채택하도록 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2009년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공식문자로 채택한 바 있으며, 2012년 남태평양의 섬나라 솔로몬제도의 과달카날주(州)와 말라이타주가 한글을 모어(母語) 표기문자로 도입한 바 있다. 이러한 한글 보급 사업은 장기적으로 볼 때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알리고, 대한민국의 이미지 제고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