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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강국으로의 야망과 도약 자유무역협정(FTA)

20세기 말과 21세기 초를 산 우리나라 사람 치고 ‘FTA’라는 용어를 모르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 영어 한 마디 배운 적 없는 시골농민도 다 아는 FTA이다. 그것이 어떤 것을 내포하고 있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막연하나마 그 내용을 모르는 사람도 극히 드물다. 그만큼 FTA는 우리에게 큰 문제로 다가왔다. 역사 이래 가장 심한 저항과 반대에 부딪쳐 논란과 투쟁이 길고도 지루했던 국가정책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FTA는 영어 ‘Free Trade Agreement’의 머리글자를 딴 약자이고 우리말로 ‘자유무역협정’이다. 자유무역협정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FTA가 무엇이기에 그토록 국민들 사이에 갈등과 분열을 불러일으켰을까. 국가 간 상품의 이동을 자유화시키는 협정, 특정국가 간에 배타적인 무역특혜를 서로 부여하는 협정으로 상대국의 관세를 낮추거나 없애서 자유롭게 교역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협정국가 간에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고 팔 때 부과하는 세금이나 수입제한 등의 무역장벽을 완화하거나 철폐해 상호간의 교역을 증진시키기 위한 협정이다.

이제는 FTA, 자유무역협정의 시대다 썸네일 이미지
이제는 FTA, 자유무역협정의 시대다(2001)

말하자면 그전까지의 보호무역 장벽을 허물고 자유무역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나라와 나라 사이에 맺는 협정의 한 형태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구체적인 교역조건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나라마다의 특정부문에 유리할 수도 있고 불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령 농산물의 경우, 우리나라 같이 영세한 농업국가에겐 상대적으로 값싼 외국농산물이 아무런 제약 없이 대량으로 들어와 국내농업을 파탄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 반대로 우리가 잘 만드는 공산품은 상대국에 내다팔아 농산물로 잃은 손해보다 몇 갑절 더 큰 이득을 남길 수도 있는 것이다.

당연히 분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그에 따른 비용을 정부가 보전해줘야 하는 문제도 생긴다. 끝까지 FTA를 반대하는 입장을 알만하다. 하지만 나라 전체를 봐야하는 정부는 다르다. 부문에 따라 크고 작은 희생이 따르더라도 길게 멀리 내다봤을 때 어느 것이 더 국익에 부합하는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바야흐로 세계의 흐름은 자유무역시대로 가고 있는 이상 FTA에 관한 한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무역이란 서로 주고받는 것, 어느 한쪽만 일방적인 독식의 장사가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수출 무림의 고수들이 우글거리는 정글에서 살아남아 세계가 놀랄만한 신화를 계속 써 나가야 하는 우리로서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을 처지가 아니었다. 좋든 싫든 FTA를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직 자국 상품의 경쟁력과 자신감뿐이다.

천만다행히도 우리는 지난 세월 수출입국의 실력과 노하우를 남모르게 쌓아 왔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아찔했던 순간들이었지만 1964년 11월 30일에 우리는 비로소 ‘수출 1억불’ 시대를 달성했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그까짓 ‘1억불’은 큰 금액이 아니었지만, 당시로서는 그날을 ‘수출의 날’로 지정해 기념할 만큼 무역수지의 첫 걸음마를 떼는 성취의 순간이었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가발이든 봉제인형이든 뭐든 만들어 내다팔았다. 1977년에는 1백억 불 수출 달성, 1988년에는 1천억 불, 1995년에는 2천억 불, 그리고 드디어 2011년에는 교역 규모 ‘1조(兆) 달러’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기하급수적인 수출신장이었다. 우리는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꿈의 무역규모 1조 달러’를 달성한 나라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 당초 ‘수출의 날’로 기념하던 행사도 덜 배타적인 ‘무역의 날’로 이름을 바꾸고, 아예 ‘무역규모 1조 달러’를 달성한 12월 5일로 날짜를 바꾸었다. 수출품목도 수출대상국도 다양화 다변화 했다. 아주 작은 경공업제품에서부터 산더미만한 배나 최신형 자동차, IT제품에서 손톱만한 반도체까지, 생산과 수출에 있어 전 세계를 누비는 ‘메이드 인 코리아’가 되었다.

전 세계 어느 항구를 가나 우리 수출상품을 실은 초대형 컨테이너 선박들이 연신 드나들거나 정박해 있다. 다시 한 번 수출 강국으로의 꿈과 야망을 펼칠 기회를 세계적 추세인 FTA에서 찾아야만 했던 것이다. 드디어 1998년 11월 대외경제조정위원회에서 FTA체결추진을 결정하였다. 그때부터 날마다 광화문 네거리나 국회 앞에서 마치 반정부 시위처럼 반대집회가 결사적으로 이어졌다. 특히 미국이란 거대시장과의 협상은 그 추진과정에서 국론분열을 일으킬 만큼 가장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무엇보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미국한테 우리가 일방적으로 잡아먹힌다는 논리가 난무했다. 여기에 또 미국산 소고기의 광우병 논쟁까지 겹쳐 격렬한 몸싸움으로 번졌다. FTA야말로 정치이념이나 사상의 문제가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역풍은 의외로 거세게 불었다.

고건 국무총리 자유무역협정 추진관련 각계 지도자 기념촬영 썸네일 이미지
고건 국무총리 자유무역협정 추진관련 각계 지도자
기념촬영(2004)
고건 국무총리 자유무역협정 추진관련 각계 지도자 초청 오찬간담회 환담 썸네일 이미지
고건 국무총리 자유무역협정 추진관련 각계 지도자
초청 오찬간담회 환담(2004)

하지만 각국을 상대로 하는 협상은 계속되었고, 그 첫 결실은 2004년 4월 1일 최초로 남미 칠레와의 FTA발효였다. 곧 이어 2006년에 싱가포르와 스위스, 노르웨이 등과의 협정 발효가 있었고, 말레이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아세안 10개국과의 협상도 진행되었다. 2010년에는 오스트리아, 영국, 체코, 프랑스, 독일 등 유럽연합(EU) 28개국과, 2011년 8월 페루에 이어 2012년에는 드디어 거대시장 미국과의 협정이 발효되었다. 호주, 캐나다, 터키 등과 과테말라, 콜롬비아를 비롯,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6개국과 그 밖의 세계 여러 나라들과의 FTA협상도 계속되고 있다.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의 경제성장 효과 썸네일 이미지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의 경제성장 효과(2004)

그 중에는 특히 우리의 최대교역상대국이며 또 하나의 거대시장인 중국과의 협정이 발효를 앞두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전 세계를 상대로 꿈에도 바라던 수출 강국의 야망을 차질 없이 활짝 펴게 되었다. 우리가 또 한 번 수출 강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으로 삼은 FTA는 현재진행형이다.

신화는 끝나지 않고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우리의 경제적 영토를 계속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의 수출상품을 가득 선적한 배는 FTA깃발을 달고 이미 뱃고동을 울리며 항구를 떠났다.

(집필자 : 신상일)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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