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은 인삼을 ‘심’이라고 불렀다. 1489년에 편찬된 의학서 『구급간이방언해』에서는 ‘인삼(人蔘)’이라고 쓰고 이를 한글로 바꿀 때는 ‘심’으로 번역했으며, 어학교재인 『노걸대언해』에서도 인삼을 ‘심’으로, 허준의 『동의보감』 ‘인삼조’에서도 ‘인삼(人蔘)’ 바로 밑에 한글로 ‘심’이라고 표기했다. 산에서 인삼을 발견하면 ‘심봤다’라고 하는 것은 이에 근거한 것이다. 인삼은 우리나라에서만 재배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인삼은 ‘전칠삼’, 일본은 ‘죽절삼’, 미국은 ‘화기삼’이라 부른다. 인삼으로 불리는 외국의 약초와 구별하기 위해 우리나라 인삼은 ‘고려 인삼’이라 부르며 한자로 쓸 때 우리나라 인삼은 ‘蔘’(인삼 삼)자를 쓰고 중국이나 일본은 ‘參’(석삼)을 쓴다.
나라마다 인삼이 재배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인삼의 품질을 따라오지 못한다. 인삼의 품질을 평가하는 기준은 사포닌이 얼마나 함유되어 있는지를 보는 것인데, ‘전칠삼’ 1.10%, ‘죽절삼’ 1.03%인데 반해 우리 인삼은 1.45%로 다른 삼보다 월등히 높다. 또한 사포닌의 종류도 화기삼 14종, 전칠삼 15종에 비해 우리나라 인삼은 22종으로 제일 많다. 동의보감에는 인삼이 ‘성질은 따뜻하고 맛은 달거나 약간 쓰며 독은 없다. 주로 오장의 기가 부족한데 쓰며, 정신과 혼백을 안정시키고, 눈을 밝게 하며, 기억력을 좋게 한다’고 나와 있다. 사포닌, 진세노사이드 등의 성분을 함유한 인삼은 『동의보감』에 나와 있는 것처럼 원기를 보하고 신체허약, 권태, 피로, 식욕부진, 구토, 설사에 쓰이며 폐기능을 도우며 진액을 생성하고 안신작용 및 신기능을 높여 준다. 약리작용으로는 항암 면역, 항스트레스, 피로회복, 신경세포 촉진 효과 등이 있고, 당뇨·혈압에도 좋다.
인삼이 언제부터 재배되었는지 정확한 연대를 알 수는 없다. 다만 고려시대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의 모후산 일대에서 인삼을 재배한 것을 인삼 재배의 기원으로 보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더불어 경상북도 경주지방에서는 신라 소성왕 때와 고려 고종 임금 때 인공적으로 산양삼을 재배했다는 기록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인삼이 부족해진 것은 고려시대 말부터였다. 중국과의 인삼 교역량이 많아져 민간의 공납 부담 증가로 인한 무분별한 인삼 채굴 때문이었다.
1724년 개경사람 박유철 등이 인삼 농사법을 개발했는데, 인삼을 재배할 때 햇빛을 가리는 이 방법으로 인삼을 대량 재배할 수 있었다. 이후 제주도를 제외한 전 국토에서 인삼 재배가 빠르게 확대되었다. 인삼재배기술은 우리 국토의 천혜적인 입지조건과 결합되어 우리의 인삼을 세계 최고로 만들었다. 인삼을 수확한 땅은 최소 10년이 지나야 다시 그 땅에 인삼을 심을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인삼이 땅의 힘을 많이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특산물인 인삼 덕분에 우리 조상들은 외국과 많은 교역을 할 수 있었다.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799년, 신라에서 길이가 9척이나 되는 인삼을 발견하여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할 때 가져가 당나라 덕종 임금에게 주었는데 인삼이 아니라며 받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이 인삼 교역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약효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우리 인삼은 일찍부터 중국으로 수출되는 교역품이었다. 당시 인삼은 재배삼이 아니라, 산에서 심마니들이 채취하는 산삼이었다. 인삼은 교역의 이익이 컸던 제품이었기 때문에 고구려는 백제로부터 양나라에 대한 인삼 교역권을 빼앗을 정도였다. 고구려, 백제는 물론 신라에서도 인삼을 수출하였는데, 734년 당나라에 수출한 인삼의 양이 한번에 200근이나 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한 후 신라와 당, 일본을 연결하는 중개무역이 활발하였는데 이때에도 인삼은 주요 교역품이었다. 고려는 중국뿐만 아니라 아라비아, 동남아 여러 나라와도 활발한 인삼 교역을 했다. 삼국시대에 몇 십 근, 몇 백 근씩 수출되던 인삼은 고려시대 초 1천근이라는 엄청난 양으로 늘어났다. 워낙 많은 양의 인삼이 교역물품이 되다 보니 고려시대에는 인삼을 장기간 보존할 수 있는 홍삼 제조기술도 등장했다.
인삼은 조선 시대에 들어와 더욱 중요한 수출품이 되었다. 특히 조선의 인삼과 중국의 비단, 일본의 은 등 세 나라의 특산물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한, 중, 일을 잇는 ‘진생로드’라는 교역로까지 형성되었다. 16세기 아시아로 진출한 서양인들도 우리나라 인삼에 관심을 보였다. 1762년 프랑스에서는 우리 인삼에 대해 백과전서 한 페이지를 할애해 기록할 정도로 탁월함을 인정하였다. 이처럼 인삼 덕분에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많은 나라들과 교역을 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인삼이 우리나라 효자 수출 상품 1호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