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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할 길을 묻다  남한산성

  • 사적57호 남한산성(미상, CET0063554(3-1)) 참고 이미지
  • 사적57호 남한산성(미상)
  • 사적57호 남한산성 수어장대 (미상, CET0063554(1-1))참고 이미지
  • 사적57호 남한산성 수어장대(미상)

“그해 바람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습기가 빠져서 가벼운 바람은 결마다 날이 서 있었고 토막 없이 길게 이어졌다.(중략) 주린 노루들이 마을로 내려오다가 눈구덩이에 빠져서 얼어 죽었다. 새들은 돌멩이처럼 나무에서 떨어졌고, 물고기들은 강바닥의 뻘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사람 피와 말 피가 눈에 스며 얼었고 그 위에 또 눈이 내렸다.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김훈, 『남한산성』 중)

작가 김훈은 병자호란이 발발해 국운이 기울어가던 조선의 역사를 위와 같이 묘사했다. 남한산성은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溫祚王)의 성터였다. 수어사 이시백이 축성했고, 이후에 처음으로 유사시에 대비하는 기동훈련을 건의하여, 1636년(인조 14)에 1만 2,700명을 동원하여 훈련을 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해 12월 청 태조 누르하치는 1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정벌을 감행한다.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던 왕은 결국 이곳에서 내려와 삼전도에서 머리를 풀어헤치고 누르하치의 아들인 청 태종 홍타이지에게 항복을 해야 했다. 그해 겨울은 우리 민족에게 유난히 추웠을 것이다. 빈틈없이 단단하게 쌓아 올린 남한산성 벽에 한강 물로도 다 씻기지 않을 통한의 역사가 스며들어있다.

이후, 굴욕의 역사로 회자되던 남한산성은 지역 유지의 원조로 보존됐다. 1947년에 처음으로 남한산성 고적 보존을 위한 보승회가 준비 중이라는 기사가 이를 말해준다.

“경기도 광주군 하의 남한산성 일대에는 인조 대왕이 건립한 서장대를 비롯하여 현절사 고성 등 고고학적, 참고자료와 국보적 고적이 많은데 나날이 퇴폐하여 가므로 남한산성보승회에서는 지방 유지의 원조로 보존에 힘써왔었다. 그러나 막대한 비용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국가적 사업이므로 일반 유지의 성원을 얻어 보승회 사업을 이어갈 재단법인을 준비 중이라 한다.”

<남한산성고적보존위한 보승회>,《경향신문》, 1947.5.16.

1953년 9월 6일 남한산성을 방문한 이승만 전 대통령이 다음 달 10월 10일 국무회의에서 특별 유시를 내려 6.25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남한산성 수축을 지시하면서 국가적 차원의 보존이 이뤄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남한산성이 허물어진 고적 수리와 도로의 신설 등을 통하여 국립공원으로 대중에게 개방된다. 하지만, 4·19 민주화 운동 후 제2공화국 때 남한산성 국립공원 지정은 무효화 되었다가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57호로 지정된다.

[대한뉴스 제41호] 새 단장한 남한산성 공원(1954, CEN0005242(3-1)) 참고 이미지
[대한뉴스 제41호] 새 단장한 남한산성 공원(1954)

그 후 1971년 3월 17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1974년 광지원에서 남한산성을 관통하여 성남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포장되었다. 이후 서울을 비롯한 인근 지역 주민들이 남한산성을 찾기가 매우 쉬워졌다.

1975년부터 1997년까지 성곽 5.1km를 보수하는데 모두 40억 여원이 투입되어 남한산성은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갔다. 1976년 문화재를 보호하고 공원의 시설물을 유지, 관리하기 위해 남한산성관리사무소가 개소되었다. 특히 1980년대 중반 이후 국민들의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자가용이 보편화되면서 남한산성은 서울 인근의 손꼽히는 문화관광지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남한산성도립공원 사업계획결정(1971, BA0035258(1-1)) 참고이미지
남한산성도립공원 사업계획결정(1971)

수어장대

남한산성의 건물 중 가장 멋진 건물로 꼽힌다는 수어장대는 서쪽에 자리한 장대라는 의미에서 ‘서장대’로 더 많이 불렸다. 수어장대는 1972년 지정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다. 조선의 국왕 중 처음 남한산성 서장대에 오른 국왕이 숙종이었으며, 병자호란의 아픔이 담긴 남한산성을 대폭 보수한 국왕도 숙종이었다. 조선은 병자호란 패전으로 청과 조약을 맺었는데, 그 내용 중 하나가 성벽의 수리나 신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1673년 청에서 ‘삼번의 난’이 발생했고 이 혼란을 틈타 숙종은 강화도에 돈대 48개와 북한산성을 축조하고 남한산성을 보강하였다.

  • 남한산성 수어장대(1977, CET0061285(1-1)) 참고 이미지
  • 남한산성 수어장대(1977)
  • 남한산성수어장대(1978, CET0061341(11-1)) 참고 이미지
  • 남한산성수어장대(1978)

이후에 수어장대는 크고 작은 보수를 거치면서 원형을 변형시키는 일까지 발생했다. 수어장대의 현판 위치와 색 역시 원형과 다르다는 지적이 일었다. 거기에 건물의 세부 사항도 몇 차례 바뀌었다. 다행히 2012년에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1909년의 유리원판 사진을 토대로 원형 복구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남한산성은 1836년경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현재 걸려있는 ‘수어장대’ 현판은 원본을 본떠서 새로 만든 것으로 1836년에 조성한 진짜 ‘수어장대’ 현판은 상자에 담아 수어장대의 2층 누각에 보관하고 있다. 남한산성은 축조 당시 단층이었으나 영조가 2층 누각을 올렸다. 영조는 외부를 수어장대, 내부는 무망루(無忘樓)라 이름 지었다. 인조의 굴욕과 효종의 못다 이룬 꿈, 북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영조 대에 조성한 ‘무망루’ 현판은 2층 누각 안쪽 벽면에 걸려있으며 남한산성박물관이 완공되면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2014년 남한산성은 동아시아지역의 공학적 군사기술을 보여주고 요새화된 군사도시라는 점에서 등재 기준을 충족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2018년 현재 백제 시조 온조왕의 위패를 모신 숭렬전을 전면 보수하고 잘못 복원된 팔작지붕을 원형인 맞배지붕으로 되돌리며 노후화된 구조물을 교체할 예정이다. 2017년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었던 수어청 무예 시연과 더불어 새롭게 남한산성에서 열린 과거 시험을 연극 형태로 재현하는 사업도 진행 중이며, 남한산성의 모든 역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남한산성박물관은 2022년에 개관될 전망이다.

(집필자 : 최유진)

참고자료

  •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https://www.gg.go.kr/namhansansung-2)
  • 김훈, 『남한산성』, 학고재, 2017.
  • 「남한산성 박물관 건립 청신호」, 데일리한국, 2017.10.17.
  • 「경기정명 1000년, 경기문화유산서 찾다. 남한산성 수어장대」, 경기일보, 2018.03.29.
  • 「경기도, 세계유산 '남한산성' 가치 되살린다」, OBS뉴스, 201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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