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늦봄이나 초여름에 학교 양호실 앞에 줄지어 서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한명씩 불려나가 알코올램프에 달군 주삿바늘로 ‘불주사’를 맞는 친구들을 보며 초조하게 차례를 기다리던 기억은 잊히지 않는 기억의 한 장면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도 우리는 간호사 2∼3명이 하루에 2∼3천명의 초등학생들에게 예방접종을 하는 후진국형 방역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예방접종이란 정부에서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실시하는 의료행위로 전염성 질환에 대한 면역력을 증가시키기 위해 독성이 약화된 균이나 죽은 균을 인체에 주입하는 것을 말한다. 즉, 면역원으로 사용하는 접종액인 ‘백신’을 주입해서 질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예방접종의 효과에 대해 살펴보면, 홍역은 전염성이 매우 높은 바이러스 질환으로 예방접종이 도입되기 전까지 매년 세계에서 8백 만 명이 홍역으로 사망하였다. 그러나 예방접종의 도입 이후 홍역으로 인한 사망은 90% 감소하였다. 홍역처럼 전염력이 강한 질병도 집단면역 수준이 70∼80%에 이르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다. 또 다른 예로, 소아마비를 일으키는 폴리오바이러스는 예방접종 도입 이후 감염자가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박멸이 선언되었다.
지난 1세기 동안의 의료기술 가운데 인간의 수명과 삶의 질을 가장 끌어 올린 것 중 하나를 고르라면 예방접종을 꼽을 수 있다. 이는 질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질병의 발생 자체를 막는 것이 환자에게 더 유익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예방접종은 고대 인도와 아라비아, 중국 등에서 ‘인두종법’(人痘種法)으로 시작되었다. 천연두 환자에게서 채취한 고름을 건강한 사람에게 접종시키는 방법으로 그리스인 티모니(Timoni)에 의해 영국에 소개되었으나, 당시에는 부정적인 여론이 컸다. 1796년 영국의 시골 의사였던 제너(Edward Jenner)는 소젖을 짜는 여인들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이를 바탕으로 ‘우두법’(牛痘法)을 발견해 천연두 예방접종을 보편화시켰다. 파스퇴르 연구소의 설립자 파스퇴르(Louis Pasteur)는 1880년부터 1888년까지 오랜 연구를 통해 병원균을 의도적으로 약화 혹은 사멸시켜 백신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고, 닭콜레라, 돼지단독, 광견병에 대한 예방접종 기술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에 예방접종을 처음 도입한 사람은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으로, 자신의 저서 『마과회통(麻科會通)』의 부록에 ‘신증종두기법상실(新證種痘奇法詳悉)’이라는 제목으로 ‘우두지침서’를 기록했다. 그가 실제로 우두술을 시술했다는 기록은 없으나 후에 종두법을 실시한 지석영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은 틀림없다. 지석영은 1876년 일본인에게서 종두법을 배워 시술에 힘썼다. 1882년 국가의 인정을 받아 지석영은 전라도 전주성 내에 우두국(牛痘局)을 설립했다.
우리나라는 1954년 「전염병예방법」을 제정한 뒤 1957년부터 시행했고, 2009년 12월 29일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로 개정해 2016년 현재까지 시행하고 있다. 예방접종은 필수 예방접종과 선택 예방접종으로 나눈다. 필수 예방접종은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거나 걸리면 위험한 질병에 대해 국가에서 모든 아이가 꼭 맞도록 지정한 접종을 말한다. 국가에서는 예방접종 대상 감염병과 예방접종의 실시기준 및 방법에 관한 사항을 정해 예방접종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필수 접종인 신생아∼소아 예방접종은 출생 직후부터 만 12세까지의 어린이에게 해당되며 ‘어린이 국가예방접종 지원 사업’에 해당해 접종비용을 국가가 지원하고 있다(2016년 기준). 결핵, B형 간염, 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 소아마비, 수두, 유행성이하선염, 폐구균, 뇌수막염, 일본뇌염 접종 등이 이에 속한다. 일부에서 부작용을 우려해 필수 접종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자신의 아이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질병의 위험성을 높이는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 선택 접종은 국가에서 정한 필수 접종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필요성이 인정되는 A형 간염, 독감, 로타 바이러스 장염, 자궁경부암 접종 등이다. 선택과 필수의 구분은 국가가 한정된 예산으로 모든 예방접종을 지원할 수 없기 때문에 나눈 것일 뿐, 질환 경중에 따른 분류는 아니다.
예방접종은 정해진 시기에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불가피한 상황이거나 아이의 컨디션이 안 좋다면 의사와 상의한 뒤 며칠 미루는 것이 낫다. 하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연기해선 안 되며, 접종 시기를 모르고 지나친 경우에도 빠진 접종을 반드시 해야 한다. 예방접종을 어린이들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필요에 따라 성인도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 성인의 표준예방접종에는 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 인플루엔자, A형간염, B형간염, 홍역, 볼거리, 풍진, 수두, 인유두종 바이러스, 수막알균, 폐렴사슬알균, 대상포진 백신 등이 있다. 모두가 예방접종 대상은 아니지만, 고령이거나 특정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에는 예방접종이 필요하다. 해외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여행국에서 정한 예방접종을 받고 ‘국제 예방접종 증명서(Yellow Card)’를 발급받아 여권과 함께 소지해야 한다.
엄마에게 아이가 아픈 것만큼 힘들고 당황스러운 일도 없다. 아이의 건강을 위해 국가에서 지정한 필수 예방접종을 반드시 실시하고, 선택 접종은 정보를 충분히 살펴본 후 접종을 하는 것이 좋다. 현재 병원이나 소아과의원에서는 육아지도회를 만들어 어린이의 성장발달과 영양 등 건강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있다. 신생아∼소아 예방접종의 경우, 미리 시기를 확인하고, 육아수첩에 접종 기록을 꼼꼼하게 작성해야 한다. 병원을 바꾸는 경우에도 하나의 수첩에 기록해야 나중에 외국 유학 등 접종 기록을 제출해야 할 때 어려움이 없다.
전염병은 예방접종 여부에 따라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누구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예방접종은 개인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집단면역 수준을 높여 해당 지역사회로 전염병이 진입하는 것을 방어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