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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다 판다

백화점의 한자 ‘백(百)’에는 일백의 뜻 외에 ‘모두’, ‘온갖’, ‘온통’의 뜻도 있다. 다양한 상품을 한 장소에 모아놓고 판매하는 집이라는 뜻을 가진 ‘백화점(百貨店)’이지만 이 백화점에 없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창문이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손님들이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에 밖을 내다보지 못하게 창문을 만들지 않는다. 둘째 시계가 없다. 이 또한 창문이 없는 이유와 비슷하다. 시계를 보다 약속시간이 되거나 집에 갈 시간이 되면 서둘러 가야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쇼핑에 집중하도록 시계를 설치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보통 백화점 1층에는 화장실이 없다. 화장실만 들렀다가 나가는 손님이 없도록 2층부터 화장실을 만든다.

  • 서울시내 백화점 촬영
  • 서울시내 백화점 촬영
    (1960)
  • 미도파백화점
  • 미도파백화점
    (1973)
  • 새로나백화점
  • 새로나백화점
    (1976)

만국박람회와 백화점

산업화의 진전은 소비생활 측면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하루가 다르게 새 상품이 쏟아지면서 상품소비 문화가 급성장하였다. 1851년 런던의 만국박람회 이후 세계 주요 도시에서 만국박람회가 유행처럼 번졌는데 이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였다. 사람이 몰리는 박람회처럼 새 물건을 보여줄 좋은 기회는 없었다.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에서는 싱거가 만든 미싱, 콜트가 만든 피스톨이 출품되었고, 1853년 뉴욕 만국박람회에서는 엘리베이터가 출품되었다.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는 지멘스의 전동기, 1876년 필라델피아 만국박람회에서는 벨의 전화기와 풀만의 침대차가 등장해 박람회를 찾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처럼 만국박람회에서 다양한 물품들이 전시되고 이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자 어떻게 하면 이런 기회를 자주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하였다. 이렇게 해서 1852년 프랑스 파리에서 일반적으로 최초의 백화점이라고 하는 봉마르셰가 탄생하였다. ‘좋은 상품을 값싸게’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봉마르셰는 정찰제를 도입하고 상품교환과 반품을 보장하는 등 근대적인 판매 제도를 도입했으며, 무엇보다 실내외를 화려하게 꾸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우리나라 소비의 시대를 열다

백화점 새단장 개점 백화점 새단장 개점 백화점 새단장 개점 백화점 새단장 개점 백화점 새단장 개점
[대한뉴스 제1257호] 백화점 새단장 개점(1979)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은 일본 자본으로 설립된 미쓰코시 백화점 서울 지점이다. 미쓰코시 백화점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권유를 받고 우리나라에 진출해 1906년 서울 충무로 지역에 미쓰코시 백화점 서울 지점을 내었다. 미쓰코시 백화점은 대지 730평, 건평 300평, 종업원 360명으로 당시에는 조선과 만주를 통틀어 최고의 백화점이었다. 정찰제를 시행하고 각 매장마다 특설 코너를 만들어 원가 수준으로 물건을 팔았던 미쓰코시 백화점은 금방 장안의 명물이 됐다. 특히 백화점 안에 있던 미술관은 각종 예술 행사의 본거지였고 신문기자들의 사랑방 구실도 했다. 미쓰코시 백화점은 1927년 현재의 신세계 백화점 자리에 현대식 건물을 착공하여 1934년에 이전하였다. 해방 이후인 1945년 미쓰코시 백화점은 동화백화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63년 7월 삼성에 인수되어 신세계 백화점이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에 의해 세워진 최초의 백화점은 1916년에 만들어진 김윤백화점이다. 김윤배가 종로 2가에 세운 김윤백화점은 이름에 백화점이 들어있지만 실제로는 도자기, 철물류를 파는 잡화점에 불과했다.

오늘날과 같은 백화점은 1929년 9월 종로 2가에 설립된 화신상회에서 시작하였다. 화신상회는 1890년 신태화라는 사람이 설립한 가게였다. 설립 당시 화신상회는 금, 은, 귀금속품을 전문으로 거래하는 상회로 운영되었는데, 1922년 양복부, 1923년 일반잡화부를 증설하면서 차츰 근대화된 백화점의 모습을 갖춰갔다. 그러다가 1931년 쌀장수와 지물업으로 자본을 축적한 박흥식에게 매입되었다. 박흥식은 2층 목조건물이었던 화신상회를 3층짜리 콘크리트 건물로 개축하고 도로변에 최신식 쇼윈도를 설치해 고객들의 관심을 끌었고, 이로서 화신상회는 근대식 경영법을 도입한 화신백화점으로 탈바꿈하였다.

이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화신백화점 바로 옆에 동아백화점이 개장하였다. 동아백화점은 덕원상점을 열었던 최남이 동아부인상회를 인수해 백화점으로 확장 개설한 것이었다. 동아백화점이 등장하면서 종로 상권은 화신백화점과 더불어 우리나라 자본끼리의 경쟁이 되었다. 두 백화점의 경쟁은 치열했다. 단기 매출 증대 전략에 골몰했던 동아백화점은 1932년 7월 화신백화점에 동아의 상호와 상품, 경영권 일제를 넘기고 말았다. 화신백화점은 인수 합병한 동아백화점을 육교로 연결하여 양 건물을 오가며 쇼핑을 할 수 있게 하였다.

화신백화점은 승승장구하였다. 두어 차례 화재를 겪기도 했으나 그럴 때 마다 보다 세련되고 화려한 모습으로 변화하였다. 지하 1층, 지상 6층 총건평 3,011평으로 당시 우리나라에 의하여 건립된 최대의 건물이 되었으며 무엇보다 재개장하면서 최신식 시설인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시설을 설치하여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광복과 6.25전쟁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명맥을 유지해 왔던 화신백화점은 과도한 투자와 물자부족, 백화점 내부의 화재 등으로 수차례 경영의 어려움을 겪었고 1980년대 문을 닫았다.

  • 신세계백화점
  • 신세계백화점
    (1971)
  • 롯데백화점
  • 롯데백화점
    (1983)
  • 서울시내 백화점
  • 서울시내 백화점
    (1986)

우리나라에 대형백화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70년대 후반부터였다. 이 시기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백화점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도 달라졌으며 백화점도 운영의 묘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백화점 운영은 활기를 띠었다. 1979년 서울 소공동에 롯데백화점이 문을 열면서 1980년대 백화점 경쟁체제가 시작되었다. 1985년에는 서울 압구정동에 현대백화점이 반포에 뉴코아백화점이 들어섰다. 이때에는 대형백화점 뿐만 아니라 중소업체들까지 우후죽순 백화점 업에 뛰어들었고, 그 결과 1996년 전국에 106개의 백화점이 개점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997년 IMF 경제위기 등으로 경쟁력 없는 업체들은 백화점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퇴출되었다.

한때 백화점에서의 쇼핑은 부를 가진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고 서민들에게 백화점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경제 성장에 따라 소득과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백화점도 대중화되었다.

(집필자 : 황은주)

참고자료

  • 한국콘텐츠진흥원 (http://www.kocca.kr)
  • 두산백과 (http://www.doopedia.co.kr)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
  • 아시아경제, 「백화점, 일상의 공간이 되다」, 2016.4.17.
  • 한국경제, 「백화점 역사」, 2000.12.7.
  • 동아일보, 「백화점 박흥식의 화신 62년 전 첫 선」, 1993.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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