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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2.82명에 달하던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2017년 1.05명까지 떨어졌다. ‘인구 절벽’ 시대로 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저출산이라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보다 현실적인 영유아보육시책이 필요하다. 이젠 국가적 명운이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영유아보육정책’은 어떤 변화과정을 거쳤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바르고 착하게 (유아교육)(1981, CEN0005503(1-1)) 참고 이미지
바르고 착하게 (유아교육)(1981)

영유아보육의 시작

우리나라 여성들이 일터에 나가기 시작한 건 1920년대부터다. 일제가 급격히 공업화를 추진하면서 조선인 노동자들은 매우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해야 했다. 가장의 임금으로 한 가정을 꾸리기 어려웠고 여성들은 일터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1921년 탁아소가 탄생했는데 서울 태화사회관에서 탁아프로그램을 개설한 것이 최초다. 1933년 기준으로 탁아소 한 곳에서 평균 1~2명이 50명의 아이를 돌봐야 했다.

그러다가 8ㆍ15 광복을 맞고 6.25전쟁이 끝난 뒤, 정부는 아이들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전쟁고아들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에서 1961년 우리나라에는 「아동복리법」이 제정된다. 어린이가 한 독립된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권리가 있으며 사회와 국가는 그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요지였다. 부모로부터 보호를 받기 힘든 요보호아동(要保護兒童)에 대한 국가 책임의 원칙이 처음으로 법제화된 것이다. 이 법을 근거로 ‘탁아소’가 법정 아동복지시설로 인정되고 보육시설 설치기준, 종사자 배치기준, 보육 시간, 보호 내용 등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제시되었다.

정부는 1968년 「아동 복리법 시행령」에 근거한 「미인가 탁아시설 임시 조치령」을 선포하여 민간 탁아시설의 설립을 확대하였으며 시설의 질적 향상과 함께 명칭도 ‘어린이집’으로 개칭하였다. 하지만 시설은 턱없이 부족했고 적십자나 원광회가 직영하는 몇몇 중요한 곳을 빼면 재정적으로 힘든 곳이 많았다.

정부는 어린이집의 양적 증대가 아닌 질적 향상을 목적으로 1977년 「미인가 탁아시설 임시 조치령」을 폐지하고 「사회복지사업법 시행규칙」을 개정하였다. 이 법을 통해 보육시설의 법인화를 장려했다. 하지만 시설운영자들이 법인으로의 전환을 꺼려 보육시설이 수적으로 감소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1978년 ‘탁아시설 운영개선안’이 마련되고 보육료를 받도록 함으로써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 자녀들도 보육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본격화된 1980년

1980년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는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활동구조의 변화를 겪게 되면서 가정관리를 전적으로 맡아 하던 주부의 사회참여와 경제활동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1970년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이 전체 경제활동 인구 38.5%였다면 1980년에는 41.6%로 늘었고, 1988년에는 45.5%에 이르며 큰 폭으로 증가했다. 특히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율이 크게 늘었는데, 1970년의 경우 전체 기혼 여성 중 경제활동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이 36.9%였다면, 1988년도에는 45%까지 증가했다.

1980년 12월 25일 정부는 취학 전 어린이들의 탁아 및 영양 개선 등의 보육 기능과 교육 기능을 병행하는 ‘새마을 협동 유아원’ 설립계획을 발표한다. 새마을 부녀회와 새마을 청소년회의 자원 활동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하루 4~5시간 보육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보육시간은 마을에 따라 조정토록 했다. 교육교재 개발과 지원은 문교부가, 운영지원은 내무부, 보건사회부와 농촌진흥청이 담당하도록 했다.

1981년 4월, 「아동복리법」은 「아동복지법」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요보호아동뿐만 아니라 모든 아동을 대상으로 국가와 국민이 아동을 건전하고 안전하게 보호, 양육할 의무가 있음을 명시했다. 1982년 정부는 「유아교육진흥법」을 제정해 보건사회부에서 관장하던 691개소의 어린이집과 내무부에서 관장하던 263개소의 새마을 협동유아원, 그리고 농촌진흥청의 382개소의 농번기 탁아소와 38개소의 민간보육시설 등 1,374개소의 보육 관련 시설을 ‘새마을 협동 유아원’으로 통합, 일원화하여 내무부에서 관장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새마을 유아원은 종일 탁아기능이 아닌 조기교육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탓에 전국엔 2천여 개(1986년기준)의 새마을 유아원이 있었지만 3세 미만을 맡기기 어려웠고,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

  • 유아원 어린이 교통공원 안전교육(1984, DET0039502(6-1)) 참고 이미지
  • 유아원 어린이 교통공원 안전교육(1984)
  • 정림 유아원의 원아교육(1984, DET0039642(4-1)) 참고 이미지
  • 정림 유아원의 원아교육(1984)
  • 호암 유아원의 원아교육 (1984, DET0039643(5-1)) 참고 이미지
  • 호암 유아원의 원아교육(1984)

보육의 새로운 패러다임, 1990년대

이에 정부는 1991년 1월 「영유아보육법」(법률 제4328호)을 제정·공포하게 된다.당시의 「아동복지법시행령」으로는 늘어나고 있는 취업모의 탁아수요에 부응하기 어렵다는 사회적 목소리를 반영한 결과였고, 보건복지부 주관 하에서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

영유아보육법 공포(안)(1994, BG0001473(17-1))참고이미지
영유아보육법 공포(안)(1991)

「영유아보육법」은 보육의 내용을 영유아의 교육, 영양, 건강, 안전과 더불어 부모에 대한 서비스와 지역사회와의 교류까지 포괄하는 종합적인 서비스로 확장했다.

2004년 6월 12일자로 보육업무는 보건복지부에서 여성가족부로 이관된다. 이때 「영유아보육법」이 전문 개정되어 공포되었고, 어린이집 인가제도 시행, 보육교사의 국가자격증제도 시행, 직장보육시설 설치 등 보육서비스의 다양화와 질적 수준 향상, 그리고 보육에 대한 공적 책임이 강화됐다. 그러다가 2008년, 여성가족부가 수행하던 가족 및 보육 정책 기능이 보건복지부로 이관(여성가족부의 보육정책국이 보건복지부의 보육정책관실로 이관)됐다.

저출산 시대를 해결할 보육정책을 찾아라!

2013년 8월 「영유아보육법」은 국가의 보육료 지원 확대, 아동학대의 예방 강화, 다문화가족의 보육 지원 등을 주요 내용으로 개정되었고, 2014년 8월 시행되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영유아(만 0~5세 이하)는 어린이집(만 0~5세)이나 유치원(만 3~5세)을 이용할 수 있고, 국가는 각 연령에 맞는 보육료 또는 유아 학비를 무상으로 지원한다. 어린이집 및 유치원을 이용하지 않는 아동에 대해서는 부모의 양육비용 부담 경감을 위한 가정양육수당을 지원한다.

2018년 7월 5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위원장: 대통령, 이하 위원회)는 ‘일하며 아이 키우기 행복한 나라를 위한 핵심과제’를 확정·발표했다. 2019년부터 출산휴가급여 사각지대 해소, 1세 아동 의료비 제로화, 아이 돌보미 지원 대상 확대 등의 과제가 추진될 예정이며 이번 대책은 아이와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삶의 질 개선에 중점을 두고 마련됐다.

우리의 보육정책은 길지 않은 역사 속에서 더디지만 꾸준히 발전해왔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춘다’는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이 강조되는 이 시대에 보육정책 역시, 가정과 일터의 균형을 맞추며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집필자 : 최유진)

참고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encykorea.aks.ac.kr)
  • 보건복지부 (http://www.mohw.go.kr/)
  • 김성희, 『한국여성의 가사노동과 경제활동의 역사』, 신정, 2002.
  • 공계순․박현선․오승환․이상균․이현주, 『아동복지론』, 학지사, 2008.
  • 조복희 외, 『보육과정』, 교육과학사, 2007.
  • 「늘어나는 탁아시설」, 동아일보, 1970.03.31.
  • 「탁아시설 태부족 취업주부 불편많다」, 동아일보, 199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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