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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의 전통, 씨름

한때 모래판의 돌풍이 심하게 분 적이 있었다. 1983년 민속씨름이 출범한 뒤 ‘씨름황제’ 이만기와 ‘인간 기중기’ 이봉걸,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 그리고 뒤를 이어 김칠규, 황대웅, 강호동 등 걸쭉한 씨름 장사들이 모래판 위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1990년대까지 천하장사 열풍이 이어졌다. 당시 천하장사들은 국민스타였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운동장 모래밭에서 바지춤을 잡고 서로의 힘을 겨루는데 여념이 없을 만큼 씨름은 국민스포츠로 대단한 인기몰이를 하였다.

씨름은 우리 민족 5천년 역사와 함께 한 우리 고유의 민속경기이면서 한국적인 문화유산으로써 가치를 지니고 있다. 유구한 역사를 지나면서 우리 민족과 늘 같이 했던 씨름은 신분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평등한 운동이었다. 씨름은 도구가 필요하지 않고 맨살로 부대면서 사람 사이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건강한 생명력을 지닌 우리의 전통적인 기예이다.

[대한뉴스 제1234호] 제9회 전국 장사씨름대회
[대한뉴스 제1234호] 제9회 전국 장사씨름대회(1979)

씨름의 역사

씨름의 흔적은 고구려 영토였던 오늘날 만주 지안현 퉁거우에 있는 각저총(角觝塚)의 벽화에 남아있다. 이 벽화에는 두 씨름꾼이 서로 허리를 잡고 힘을 겨루고 있으며 그 옆에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서서 심판을 보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분묘 벽화에까지 이런 그림을 그린 것을 보면, 당시 고구려인들이 씨름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그림에 있는 씨름의 모습은 후대의 씨름 모습과 옷차림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씨름하는 방법은 같다. 씨름은 고려시대에도 널리 보급되었는데, 체력단련의 한 종목이었으며 단오나 백중날 등 절기와 명절을 계기로 자주 씨름 경기를 열었다. 그리고 이 대회에서 승리를 하게 되면 ‘용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조선의 씨름은 단원 김홍도의 ‘씨름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부채를 들고 있는 양반의 모습이 있는 것으로 보아 씨름도는 음력 5월 5일 단오절에 펼쳐진 씨름대회를 그린 듯하다. 씨름판에는 씨름꾼 둘이 서로 잡고 있고 엿장수를 비롯해 여러 명의 구경꾼이 지켜보고 있다. 두 씨름꾼은 요즘 씨름과 달리 모두 샅바를 매지 않고 있다. 대신 앞쪽의 씨름꾼은 오른손 팔뚝에 바를 감고 상대의 왼쪽 허벅다리에 감고 있을 뿐이다. 이런 식으로 하는 씨름을 ‘바씨름’이라 하는데, 바씨름은 경기와 한양 일대에서 유행한 전통 씨름 방식 중의 하나이다. 조선시대에는 씨름이 더 대중화 되었을 뿐만 아니라 씨름에서 지고이기는 것 때문에 다툼이 생겨 한때 씨름을 금지시킨 일도 있었다.

씨름이 현대식 경기로 발돋움한 것은 1927년 전후의 일이다. 1927년 서울의 고등보통학교에서 체육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강낙원, 서상천, 한진희 등이 씨름의 근대화 작업을 하였다. 그들은 지역별 씨름에 대해 조사를 하였는데, 이 조사를 통해 많은 지역에서 왼씨름이 성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후 경기방법을 왼씨름 위주로 통합하였다. ‘왼씨름’은 상대편의 다리샅바를 왼손으로 잡고 오른 어깨를 맞대며, 오른손으로는 상대편의 허리샅바를 잡고 하는 씨름을 말한다. 이들은 1927년 9월 조선씨름협회를 결성하였고, 2년 뒤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제1회 전조선씨름대회를 열었다. 조선씨름협회는 1947년 대한씨름협회로 개칭해 잠시 중단되었던 전조선씨름대회를 전국씨름선수권대회로 이름을 바꾸어 개최하였으며, 2016년 현재 제70회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6월 단오절 행사 씨름 대회 썸네일 이미지
6월 단오절 행사 씨름 대회(1953)
전국장사 씨름대회 천하장사 기념 촬영 썸네일 이미지
전국장사 씨름대회 천하장사 기념 촬영(1959)
군민 친선 체육대회(씨름) 썸네일 이미지
군민 친선 체육대회(씨름)(1963)

민속씨름의 탄생

씨름대회는 매년 지속적으로 개최되었다. 1959년 한국일보사와 대한씨름협회의 주관 아래 1963년까지 네 차례 열렸던 전국장사씨름대회, 전국체육대회에서의 씨름경기, 대한씨름협회 주최로 전국씨름선수권 및 대통령기 쟁탈전 등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1983년 새로 결성된 민속씨름협회가 KBS와 손잡고 개최한 제1회 천하장사씨름대회를 통해 본격적인 프로씨름이 탄생하게 되었다. 당시 변변한 볼거리가 없던 스포츠팬들에게는 폭발적인 인기였다. 처음 시작은 프로씨름이었는데, 우리의 전통적인 기예에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여론으로 인해 민속씨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이를 주관했던 한국프로씨름협회도 한국민속씨름협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1983년 열린 제1회 천하장사씨름대회에서는 직접 모래판위에서 씨름을 하였고 체급도 4체급으로 구분하여 시행했다. 이 체급의 이름은 태백급(75kg 이하), 금강급(75kg 이상 85kg 이하), 한라급(85.1kg 이상 95kg 이하), 백두급( 95.1kg 이상)으로 정하고 체급의 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출전하는 천하장사전이 따로 있었다. 여기서 ‘백두’, ‘한라’, ‘금강’, ‘태백’이라는 체급 명칭은 한국씨름연맹이 프로씨름대회의 출범을 앞둔 1983년 3월 19일부터 31일까지 신문과 방송 광고를 통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체급 명칭을 공모하여 얻은 이름이다.

제1회 KBS배 쟁탈 전국장사 씨름 대회 썸네일 이미지
제1회 KBS배 쟁탈 전국장사 씨름 대회(1972)
제2회 전국 새마을 시·도 대항 씨름대회 썸네일 이미지
제2회 전국 새마을 시·도 대항 씨름대회(1974)
제15회 중봉 충렬제 읍·면 대항 씨름 대회 썸네일 이미지
제15회 중봉 충렬제 읍·면 대항
씨름 대회(1990)

제1회 천하장사씨름대회의 결승전에는 450여 명의 출전 선수 가운데 당시 씨름판을 주름잡았던 이준희, 이봉걸, 홍현욱, 이승삼, 최욱진 등의 선수들이 유력한 초대 천하장사 후보들로 떠올랐는데, 의외로 약관의 나이였던 이만기 선수가 천하장사가 되었다. 이만기 선수는 장사 중의 장사로 군림하면서 스포츠 단일대회 개인경기 상금사상 최고인 1천 7백 만 원을 거머쥐었다. 허리힘이 천하제일이었던 이만기는 천하장사 10회, 백두장사 18회, 한라장사 7회를 포함해 무려 42회의 장사 타이틀을 차지하면서 모래판의 황제로 맹위를 떨쳤다. 이만기 선수와 같은 나이에 백두장사 타이틀을 차지한 강호동 선수는 은퇴할 때까지 백두장사 7회와 천하장사 5회로 명성을 떨쳤으며, 경기 전 괴성을 곁들인 독특한 제스처 등으로 ‘모래판의 무법자’로 불리며 인기몰이를 했다.

이 밖에도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 ‘인간기중기’ 이봉걸, ‘소년장사’ 백승일 등이 개성 있는 경기 능력을 보이며 민속씨름의 황금기를 만들어 내었다. 씨름에서 이긴 장사에게는 원래 황소 한 마리를 주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농경사회에서 소만큼 귀한 재산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씨름이 프로화하면서 상품 대신 상금을 주게 되었다. 거액의 상금을 내건 효시는 제1회 KBS배쟁탈 전국장사씨름대회였다. 이 대회에서는 우승자에게 100만 원의 상금과 은배를 줌으로써 상금이 커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때는 천하장사에게 5,000만 원의 상금을 주기도 했다.

한편, 근대 이전 씨름에서는 이긴 사람에게 상대할 사람이 없을 때까지 씨름을 계속하였는데, 마지막까지 싸워 이긴 사람을 ‘판막음’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민속씨름이 되면서 대회에서 승리한 사람은 ‘장사’라고 불렀다. 민속씨름은 점차 인기를 더해가면서 일양약품, 보해양조, 럭키증권, 현대 등 여러 개의 프로팀이 창단되었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아 한때 10개가 넘었던 프로팀이 잇달아 해체되면서 점차 쇠락의 길을 걸었다. 프로씨름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던 중 2000년대 들어서는 대학 씨름 등을 중심으로 대학씨름연맹이 창설되면서 씨름은 다시 부흥을 꾀하고 있다. 또한, 2008년 씨름의 세계화를 위해 사단법인 세계씨름연맹이 창립되었고, 2013년 5월 2일 대한씨름협회와 한국씨름연맹이 다시 협약식을 갖고 씨름단체 간의 화합을 통한 활성화대책, 민속씨름의 활성화를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집필자 : 황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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