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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바다의 외로운 길잡이 등대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자고, 한 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동요 ‘등대지기’는 적막한 바다를 배경으로 홀로 서 있는 등대와 그 등대를 지키는 등대지기(현: 항로표지 관리원)를 떠올리게 한다. 등대는 해변이나 섬, 방파제 위에 높게 서있어 낮 동안은 탑의 색깔로밤에는 강한 불빛을 비추어 선박 또는 항공기에 육지의 위치, 위험한 곳 등을 알린다.

등대가 세워지기 전에는 불이나 소리를 이용했다. 횃불이나 봉홧불 또는 꽹과리 같은 악기를 이용해서 밤바다의 뱃길을 알려 주었다. 등대가 빛으로 신호를 보낼 수 있는 것은 등대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등명기 덕분인데, 등명기는 빛을 내보내는 전구와 빛을 바깥으로 멀리 반사시키는 렌즈로 만들어진다. 높은 유지비와 GPS등 전자 항해 보조 기구의 등장으로 등대는 점차 사라지고 있으며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한 폭의 그림 같은 등대들을 최근에는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날씨가 나빠 등대와 그 불빛이 잘 보이지 않을 경우에는 사이렌이나 경적 등을 이용해서 경고 신호를 전달했다. 소리 신호로는 수세기 동안 대포, 종 등이 이용되었고 이후 사이렌이나 경적을 이용하고 있다. 소리가 미칠 수 있는 범위는 기상 상태에 따라 다르므로, 대다수의 등대는 배의 레이더를 증폭하거나 항해자가 식별할 수 있는 고유한 신호를 발사한다. 최근에는 인공위성의 전파를 이용하는 위성항법보정시스템(GDPS)으로 전파표지를 하는데, 전파신호는 해양에서는 185㎞ 범위, 내륙에서는 80㎞ 범위까지 도달한다.

  • 연평도 등대
  • 연평도 등대(1956)
  • 울릉도 등대
  • 울릉도 등대(1984)
  • 거문도의 등대
  • 거문도의 등대(2004)

우리나라의 등대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후 조선후기까지 횃불·봉화·꽹과리·깃발 등을 선박항해의 지표로 삼았으며, 수심이 얕은 곳에는 나무를 꽂아 항로표지로 이용하였다. 『삼국유사』에는 가야의 김수로왕이 아유타국(인도)에서 온 신부의 배를 횃불로 인도하는 장면이 구체적으로 쓰여 있고, 세종실록(1422년)에는 충남 태안군 근흥면 가의도리 앞 해상 광장목에 지방수령이 향도선을 배치해 세곡선박이 무사히 통과할 수 있도록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근대 등대의 역사는 1800년대 후반 서양 상선의 동양진출과 부산·인천·원산항 등의 개항으로 선박운항이 활발해지면서 시작되었다. 1895년 전 해역에 걸쳐 등대 건설 지점을 조사하고, 1902년 해관등대국(海關燈臺局)을 설치하여 등대 건설에 주력하였다.

1903년 6월 1일 최초의 근대식 등대인 팔미도등대, 소월미도등대와 북장자서등표, 백암등표가 처음 불을 밝혔고 그 다음해 1904년 4월 부도등대가 세워졌다. 1905년 10월 러일전쟁 승리 후 일본은 우리나라 전 연안에 등대를 증설하기 시작, 해방 직전까지의 등대시설은 등대 32기, 등표 110기, 등부표 22기, 안개신호 18기, 무선전신 9기, 기상관측 23기였다. 그러나 태평양전쟁과 6.25전쟁 등으로 등대가 거의 파괴되어 1960년대 초까지 복구사업에 힘써왔다. 우리나라는 1962년 9월 국제등대협회(IALA)에 가입하였고, 국제 해상교통 체계에 의한 계획적인 등대건설을 시작하여 오늘날 양적·질적으로도 뒤떨어지지 않는 국제 수준의 시설을 확보하게 되었다. 유인등대 38개를 비롯해 순회 점검하는 무인등대와 바다에 떠 있는 등부표(燈浮標), 음파표지까지 합하면 현재 우리나라의 항로표지 시설은 5,000여 개에 이른다.

장기곶 등대 소개 장기곶 등대 소개 장기곶 등대 소개 장기곶 등대 소개 장기곶 등대 소개
[대한뉴스 제1945호] 장기곶 등대 소개(1993)

인천상륙작전의 일등 공신, 우리나라 최초의 팔미도등대

구한 말 일본과 서구 열강은 우리나라 연안에 등대 설비가 없어 함선의 운항이 어렵고 무역상선의 해난사고가 빈번해지자, 우리 정부에 등대 건설을 요구했다. 정부는 인천항 관세수입 일부를 건설비로 충당해 1902년 등대 건설에 착수, 이듬해 6월 1일에 점등했다.

인천 앞바다 남쪽으로 15.7㎞ 떨어진 외딴 섬 무인도였던 팔미도에 콘크리트와 대리석으로 세운 팔미도등대는 바닷물에 부식되지 않는 첫 번째 현대식 등대였다. 팔미도등대는 6.25 전쟁 중인 1950년 9월 14일 자정, 켈로 부대 특공대 요원들이 팔미도로 들어가 등대불을 밝혀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게 한 숨은 주역이기도 했다. 100년간의 임무 수행을 다한 2003년을 끝으로 등대의 불은 밝히지 않는다. 2002년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되었고, 2003년에는 100주년 기념상징 조형물인 ‘천년의 빛’이 건립되었다.

  • 한산도 제승당 앞바다 등대
  • 한산도 제승당 앞바다 등대
    (1985)
  • 홍도 등대
  • 홍도 등대
    (1986)
  • 장수갑 등대박물관
  • 장수갑 등대박물관
    (1993)

바다의 길잡이 등대, 복합문화 공간으로 새롭게 변신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무인도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면 어떨까? 현재도 가능한 ‘등대체험 프로그램’은 여수 거문도등대와 부산 가덕도등대, 제주 산지등대 등 3곳으로 이곳에서는 펜션과 유사한 숙박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2027년까지 태안 옹도등대를 포함해 전국 38개 유인등대를 해양문화공간의 중심지로 조성하고 해양관측 및 통신기지로 활용하는 내용의 '유인등대 복합기능화 전략'을 마련했다. 현재 운영 중인 유인등대 중 태안 옹도등대 등 13개소를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한 원격제어시스템을 활용해 2027년까지 단계적 무인화를 추진하고, 무인화된 등대는 미술관, 레스토랑 등 탐방객이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휴양공간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한편, 독도, 마라도 등 국토 끝단에 위치한 7개 등대에는 해양영토 관리 기능을 부여하고, 서해 및 남해 영해기선 부근에 위치한 소청도·홍도 등 7개소에서는 불법조업감시 지원업무도 부여할 것이라고 한다. 바다의 신호등 등대는 이제 해양영토 지킴이, 문화 공간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복합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집필자 : 남애리)

참고자료

  • 『등대+등대여행』, 생각의나무, 2007.6.25.
  • 「항로표지법」(법률 제14476호)
  • 디지털타임스, 「인천 팔미도등대 최초 가동 유인등대 전국에 38개 운영 안개ㆍ우천 땐 무신호로 알려」, 2013.12.25.
  • 해양수산부 (http://www.mof.go.kr)
  • 국립등대박물관 (http://www.lighthouse-museum.or.kr)
  • 항로표지기술협회 (http://www.kat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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