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獻血)은 자신의 혈액을 타인에게 기부하는 행위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사고나 수술로 인한 과다 출혈, 백혈병, 혈우병 등의 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겐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혈액은 과학기술로 생성이 불가능하며 대체할 물질 역시 없다. 또한, 채혈한 혈액은 장기간 보관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적정 혈액 보유량인 5일 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헌혈이 이루어져야 한다.
헌혈은 혈액을 기부하는 것이지만, 처음부터 ‘기부’가 목적은 아니었다. 중국작가 위화의 작품 『허삼관매혈기』의 주인공 허삼관이 피를 팔아 가족을 부양했던 것처럼 많은 국가에서 매혈(賣血)이 성행했고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1950년대에는 피를 팔아 생계를 이으려는 사람들이 혈액은행 앞에 장사진을 이룰 정도였는데, 여기서 나온 유행어가 ‘쪼록꾼’이다. 이는 매혈을 일삼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유리병 속에 피가 들어갈 때 나는 ‘소리’ 때문에 이렇게 불렸다.
혈액관리 업무는 6.25전쟁 때 군대에 수혈부(輸血部)를 두면서 시작됐다. 정부는 1954년 국립중앙혈액원을 창설하여 1958년 대한적십자사에 이관했다. 1970년 정부는 「혈액관리법」을 공포하면서 직접 혈액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1981년 다시 대한적십자사가 업무를 전담하며 혈액의 매매 행위는 차츰 줄어들었다. 「혈액관리법」 제3조(혈액 매매행위 등의 금지) 제1항에는 ”누구든지 금전, 재산상의 이익 또는 그 밖의 대가적 급부를 제공하거나 제공할 것을 약속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제18조에는 “제3조를 위반하여 혈액 매매행위 등을 한 자에게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 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처벌 조항을 두고 있다. 현재 국내 주요 도시에 있는 적십자혈액원을 중심으로 헌혈운동을 추진하고 있으며, 「헌혈관리법」에 헌혈자의 건강진단과 헌혈할 수 없는 조건이 규정되어 있다. 헌혈을 주관하는 기관에는 ‘대한적십자사’와 ‘한마음혈액원’이 있다. 각 기관은 ‘헌혈의 집’과 ‘헌혈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운영방식은 다르지만 혈액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헌혈증의 규격과 발급처는 대한적십자사로 동일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헌혈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만 16세부터 만 68세까지이다. 만 16세 이상이면서 45kg 이상 50kg 미만의 여성은 320ml, 만 17세 이상이면서 50kg 이상의 헌혈자는 400ml를 채혈한다. 헌혈을 하려면 먼저 헌혈 적격성을 평가하는 ‘배제 설문지’를 작성해야 한다. 나이, 몸무게, 마지막으로 헌혈한 날(‘전혈’은 60일 이후, ‘성분’은 대개 2주 후에 가능), 현재 건강상태, 문신 여부, 의약품 사용, 해외 거주, 최근 국제 여행, 성교 내역을 체크해서 위험 요소들을 걸러낸 후, 혈액 비중 검사와 혈액형 검사를 실시하고, 혈액의 농도가 높을 경우에만 헌혈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채혈이 끝난 혈액은 수혈 전에 또 한 번 기본검사와 추가검사를 실시하고, 모든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은 혈액만 수혈에 사용된다. 검사 결과는 헌혈자에게도 공지한다.
헌혈은 건강에 이상이 없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행할 수 있는 이타적 행위 중 하나다. 하지만 헌혈을 하는 사람도 건강상 이득을 볼 수 있다. 헌혈을 하기 전 체온, 맥박, 혈압, 헤모글로빈 수치 등 헌혈 적합 여부를 판단하는 간단한 신체검사를 할 수 있고, 헌혈 후 에이즈 바이러스 등 혈액매개성 감염질병이 없는지도 체크할 수 있다. 만약 이상이 있을 경우 즉시 알 수 있어 빠른 대처가 가능하다. 또한 혈액의 점성이 높아지면 설탕시럽처럼 끈끈해질 수 있는데, 이럴 때 헌혈을 하면 혈관 내벽의 손상을 최소화하면서 혈류의 흐름을 개선할 수 있다. 혈류가 원활해지면 동맥이 막히는 증상을 예방할 수 있다. 『미국역학저널(American Journal of Epidemiology)』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혈액기증자들은 심장마비 위험률이 88%나 줄어들고, 뇌졸중과 암 발병률 역시 떨어진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혈액 부족사태를 겪고 있다. 특히, 동절기에는 혈액부족 현상이 심각하다. 한국적십자협회는 “현재(2016년 2월 기준) 적정 혈액 보유량이 2만 6천 610 유닛이지만, 그 가운데 1만 2천 287 유닛만 보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특히, 1∼3월에 헌혈자 숫자가 적은데, 겨울철에 혈액 수급이 부족한 것은 중·고교생의 방학이 큰 원인으로 꼽힌다. 이는 국내 혈액 수급 체계가 10∼20대 학생과 군인 위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중·고교생이 헌혈에 적극 참여하는 이유는 헌혈이 ‘봉사활동 점수’로 인정되어 30분 헌혈로 4시간의 봉사활동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봉사활동 제도의 의미가 퇴색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대 의견도 있지만, 이를 없애면 학생들의 헌혈 참여율이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군인들 역시 혈액난 해소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국내 헌혈 참여 인원은 연간 250여 만 명으로, 전체 국민의 5% 정도이다. 헌혈자 중 14%는 군 장병들이다. 2014년 서울을 기준으로 10대의 헌혈 비율은 31.2%, 20대는 45.0%로, 10∼20대가 전체 헌혈자의 76.2%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혈액 공급을 현재처럼 10∼20대에게 의지할 경우, 향후 혈액 수급에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전망한다. 저출산의 여파로 저 연령대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30∼40대의 헌혈 비율이 50.1%(2013년 기준)에 달해 같은 연령대의 헌혈 비율이 18.8%에 불과한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우리도 중·장년층의 헌혈을 유도해야 하는데, 직장에서 헌혈을 한 직원에게 인사평가에 가산점을 부여하는 등의 방안도 고민해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남성은 체중의 8%, 여성은 7% 정도의 혈액을 보유하고 있고, 이중 15%는 비상시를 대비한 여유분이다. 또 비워진 혈액은 1∼2일 후에 회복되므로, 헌혈은 자신에게 남는 것으로 타인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뜨거운 나눔’이라는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