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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발명품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TV가 아닐까 싶다. 존 베어드(John Logie Baird)가 1926년 최초로 선보인 이래, 텔레비전은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으며 기술의 발전과 함께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텔레비전 방송은 1956년부터 시작되었다. 텔레비전 수상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 ‘대한방송’은 미국의 RCA사와 민간자본이 합작회사로 발족해 호출부호 'HLKZ'로 방송했다. 카메라 두 대로 하루 두 시간 방송을 선보였다. 라디오로 듣는 데 익숙했던 사람들은 TV를 보며 ‘활동사진 붙은 라디오’란 별명을 붙였다. 세계에서 15번째, 아시아에서 4번째로 TV방송을 시작한 ‘대한방송’은 TV가 보급되기 힘든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이유와 1959년 화재까지 겹쳐 1961년 방송을 중단하게 되었다.

대한방송의 시대가 지고 TV 삼국시대가 열리다.

“KBS, 여기는 <채널9> 서울텔레비전방송국입니다. HLCK”
1961년 12월 31일 '국영 서울텔레비전방송국’이 개국하면서 본격적인 TV 방송 시대가 열렸다.

“TV 방송에는 시청자가 먼저 확보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미제 RCA와 일제 내셔널 등 2만 대의 수상기를 수입, 월부로 판매하였는데 이때 월부구매를 원하는 사람의 수는 대단한 것이어서 접수용지만 해도 20만 장이 나갔다는 소문과 용지 값만 해도 TV대금에 가깝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소란을 피웠던 것이다.”(「이것이 서울이다 (19) 라디오·TV」, 매일경제, 1967년 9월 21일자 기사)

1964년 12월 7일 개국한 동양텔레비전방송국(DTV, 우리나라 최초의 민영방송)은 1965년 라디오서울(RSB)과 합병하여 중앙방송(JBS)이란 이름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해 선보였다. 하지만 중앙방송이라는 사명(社名)이 서울중앙방송국(KBS)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1966년 7월 TBC로 변경되었다.

텔레비전 개국식 참고 이미지
텔레비전 개국식(1956)
동아방송국 개국 기념공연 참고 이미지
동아방송국 개국 기념공연(1963)
중앙방송국 발족 참고 이미지
중앙방송국 발족(1968)
MBC-TV 개국식 축하리셉션 전경 참고 이미지
MBC-TV 개국식 축하리셉션 전경(1969)
MBC-TV스튜디오 참고 이미지
MBC-TV스튜디오(1969)
KBS-TV 스튜디오 녹화장면 참고 이미지
KBS-TV 스튜디오 녹화장면(1971)

1969년 8월 8일 MBC-TV가 개국했는데, MBC는 교육방송으로 허가를 받고 교육방송 위주의 편성을 하다가 1970년 상업 방송을 선언하면서 오락 위주의 편성으로 전환하였다.

이런일 저런일-한국문화방송TV 개국실황 참고 이미지
이런일 저런일-한국문화방송TV 개국실황(1969)

그때부터 KBS, TBC, 그리고 MBC의 방송 3파전이 시작되었다. 이와 함께 TV 수상기의 보급이 경쟁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하면서 텔레비전 방송의 과열경쟁이 벌어졌고, 이를 해소할 방안이 국무회의에서 논의되기도 했다. 이 회의에서 KBS는 국영방송 체제에서 벗어나 공영방송체제로 개편된다. 1970년「한국방송공사법」이 확정되고 1973년 '한국방송공사'가 발족하였다.

이와 함께 MBC는 경향신문을 흡수․통합하며 지역의 독립 민영 상업방송국들을 ‘문화방송’이라는 이름으로 통일해 독점적인 전국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TBC는 호남지역의 라디오사와 프로그램 제휴계약을 맺으며 네트워크망을 넓혀나갔다.

편성권 반납의 해부터 방송사 통폐합까지

1974년 긴급조치 9호 이후 프로그램 편성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76년에는 방송사들이 획일적인 편성정책에 맞춰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했는데, 오전 6시는 어린이 시간대, 7시는 뉴스와 가족 시간, 8시는 사회, 정책, 경제 PR 시간 등으로 정해져 있어 채널은 달랐지만, 비슷한 내용의 방송 프로그램이 전파를 타는 이른바 ‘편성권 반납의 해’를 보내게 되었다. 1980년대엔 또 다른 변화가 찾아왔다. TBC는 KBS에 흡수되고 MBC는 공영화되었다. 1980년 9월 1일 한국방송협회가 실시한 방송 자율정화방안을 시행하고 국민교육과 교양방송을 저해하는 저속한 방송을 일체 금지했다. 어린이 공상 만화영화와 여성의 위생용품 광고가 금지되는 등 여러 규제가 잇따랐다.

한국방송공사 발족 참고 이미지
한국방송공사 발족(1974)

컬러 TV의 시대, 다채로웠던 1980년대의 방송

1981년 1월 1일부터 우리나라에서 컬러 TV 방송 시대가 열렸다. 화려한 영상과 더불어 쇼와 드라마는 대형화되었고, 뉴스쇼와 보도 프로그램들이 선보이며 텔레비전 저널리즘 시대를 이끌었다.

그리고 KBS가 1983년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453시간 45분 동안 생방송으로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 방송은 역사상 유례없는 초대형 방송이란 기록을 세웠다.
2013년 서울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목록을 작성하면서 인류 무형유산 분야에 이 프로그램과 관련된 기록물을 포함시켰다.

1980년대부터 TV 방송을 통해 대통령 후보들이 토론회를 벌였고, 국회 청문회는 생중계되며 사람들 사이에선 어제 본 TV 프로그램 내용이 언제나 화제의 중심이 됐다. 그리고 텔레비전의 오락적 측면 외에 교육적인 측면도 강조되었다. 1980년 7월 30일 정부가 과열과외 억제책으로 ‘괴외전면금지’를 선언하면서 KBS가 제3TV를 통해 선보이던 ‘TV 고교 가정학습’이 새삼 주목받게 됐다. 1951년 KBS에서 교사 교육을 목적으로 선보인 교육방송은 1980년대 입시준비의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그 역할이 중요해졌고, 1990년에는 KBS에서 분리되어 한국교육개발원 부설 교육방송으로 송출을 시작하면서 지금의 EBS가 탄생했다.

1991년 12월 서울방송(SBS)이 개국하면서 방송사 간의 시청률 경쟁이 심해졌다. 방송의 선정성, 저질성 시비가 잇따랐고, ‘TV 속의 TV’ 등 방송사들은 자체 비평 프로그램을 만들며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1995년부터는 지역에 민영텔레비전방송이 개국했으며, 1998년 문화관광부가 방송영상산업진흥책으로 독립 제작사를 집중 육성하였다. 이로써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열리며 우리 방송 프로그램이 해외로 그 시장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2001년 지상파TV의 디지털방송이 시작되었으며, 같은 해 방송 프로그램을 부적절한 언어, 폭력성, 선정성 등의 기준으로 5등급으로 나눠 TV화면에 표기하는 제도인 방송프로그램 등급제도 시행되었다.

SBS 민영방송 개국 참고 이미지
SBS 민영방송 개국(1991)

텔레비전 방송국이 처음 방송을 시작했을 때가 무색하게 지금은 케이블과 IPTV, 다양한 위성방송이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TV 리모콘을 누르면 끝도 없는 채널이 검색되는 채널 홍수의 시대다. 2011년 종합편성채널까지 개국하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 지고 있다. 언론을 가리켜 제4의 권력이라고 부르지만, 그 중에서도 텔레비전의 영향력은 가장 강력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만큼, 거대 자본의 언론시장 장악과 언론의 독과점 현상에 대한 우려도 간과할 수 없다. 다채널 시대, 좋은 방송을 해야 하는 방송국의 책임과 함께 좋은 방송을 선별할 줄 아는 시청자의 안목이 동시에 요구되고 있다.

(집필자 : 최유진)

참고자료

  • 경향신문, 「획일적 編成(편성)에 큰 不滿(불만)」, 경향신문, 1979.3.16.
  • 두산백과 (http://www.doopedia.co.kr)
  • 매일경제, 「이것이 서울이다 (19) 라디오·TV」, 1967.9.
  • 원용진, 마동훈, 김병훈 외, 『한국 텔레비전 방송 50년』, 커뮤니케이션북스, 2011.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encykorea.aks.ac.kr)
  • 한국방송학회,『한국 방송의 사회문화사』, 한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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