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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라

‘국가는 건전한 소비행위를 계도하고 생산품의 품질향상을 촉구하기 위한 소비자보호운동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한다.’ 이는 「헌법」 제124조의 내용이다. 소비자의 권리나 보호 등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전문은 없으나 「헌법」 제124조를 통해 소비자보호운동을 보장하고 있는 만큼 소비자의 권익이 헌법 차원에서 보호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소비자보호운동인가?

그렇다면 왜 소비자보호운동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소비자보호운동이 우리의 실생활과 아주 밀접한 부분이며 최근 들어 소비자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 소비자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1969년 발암성 인공감미료 사건, 1970년 비소가 든 소다를 먹고 연쇄참사를 당한 소다사건, 1971년 공업용 석회를 사용한 횟가루 두부사건, 1975년 콜라병폭발사건, 1978년 번데기 식중독 사건, 1979년 타르색소가 검출된 수입고춧가루사건, 1988년 콩나물 농약 사건, 1989년 라면 공업용 수입우지사건, 1994년 녹즙기 손가락절단사건과 뇌염백신사건, 1995년 고름우유사건, 1997년 수입쇠고기 O-157균 검출 사건, 1998년 젖병, 장난감 등에서 환경 호르몬 검출사건, 2000년 납이든 중국산 냉동 꽃게, 복어 유통사건 등은 우리의 실생활을 위협했던 소비자피해사건이다. 이런 사건들은 금전적인 피해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며 재발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입는 피해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렇듯 소비자피해사건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면서 이를 개선하고 소비자의 권리를 회복하는 일이 절실해짐에 따라 소비자보호운동이 생겨났다.

소비자보호법공포(안) 소비자보호법공포(안) 소비자보호법공포(안)
소비자보호법공포(안)(1979)

소비자보호운동의 시작

소비자보호운동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생겨난 운동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보편화되면서 소비생활을 좀 더 합리적으로 이끌고 소비자 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필요해졌다. 또한 대량생산으로 인해 많은 물자들이 나오다 보니 그에 따른 정보 제공도 소비자에게는 필요한 부분이 되었다.

미국은 소비자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대표적인 나라이다. 1891년 뉴욕에서 ‘소비자연맹’이 결성된 것을 시작으로, 1936년에는 ‘소비자동맹(Consumers' Union, CU)’도 출범하였다. 특히, ‘소비자동맹’은 시민단체로 시작해 회원 700만 명을 둔 미국 내 최대 소비자단체로서,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 각종 검사 기구를 갖추고 자체검사결과를 발표하는 등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곳에서 펴내는 상품검사지 ‘컨슈머 리포트(Consumer Report)’는 정기 구독자가 4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미국 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소비자 관련 보고서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의 소비자운동이 힘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이 의회에 보낸 ‘소비자의 권익 보호에 관한 특별 교서’에서 ‘소비자 안전의 권리,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 의사를 반영할 권리, 소비자의 자유 선택 권리’ 등 소비자의 4대 권리를 천명하면서 소비자 보호 운동에 힘을 실었기 때문이다. ‘국제소비자연맹’에서는 1983년에 매년 3월 15일을 ‘소비자 권리의 날’로 정하였으며 케네디 대통령이 주장한 소비자의 4대 권리에 ‘보상받을 권리, 소비자 교육을 받을 권리,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 등을 추가하여 이를 소비자의 7대 권리로 선언하였다.

  • 소비자보호대회 전경
  • 소비자보호대회 전경
    (1973)
  • 소비자보호협회 소비절약캠페인
  • 소비자보호협회 소비절약캠페인
    (1982)

우리나라 소비자보호운동의 역사

우리나라 소비자보호운동은 각종 여성단체에 의해 1950년대 중반에 시작되었다. 당시는 소비자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자리 잡기 전이었고 6.25전쟁 직후라 먹고 사는 일에 바빠서 소비자운동이라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다. 한국부인회, 대한 YWCA 등 민간여성단체에 의한 국민계몽 위주의 소비자보호운동이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실질적인 소비자보호운동은 1960년대부터였다. 우리 사회는 빈곤타파와 경제성장의 문제에 당면한 상태였기 때문에 정부의 소비자보호정책은 여전히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1967년 한국부인회에서는 소비자들의 불만을 들을 수 있는 소비자 불만 창구를 개설하였고 서울 YWCA는 1968년에 소비자보호위원회를 구성하여 소비자보호를 위한 각종 강연회 및 세미나 등을 개최하였다. 소비자 문제가 생겨도 소비자 스스로가 그것을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런 활동들을 통해 서서히 소비자들의 의식 변화가 이루어졌으며 비로소 소비자문제에 대한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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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뉴스 제1737호] 소비자보호운동(1989)

1970년대에 일어난 소비자 문제로는 비소가 든 소다를 먹고 발생한 연쇄참사 사건, 어린이를 포함한 37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여러 명이 사망한 번데기 식중독 사건이 있다. 이렇게 우리가 직접 먹는 제품에 대한 다양한 사고가 발생하다 보니 사회적으로 불량식품에 특별히 관심이 많아졌다. 이때의 소비자보호운동은 주로 불량상품전시회나 우수공산품전시회 등을 통해 소비자들이 어떤 기준으로 어떤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알리는데 주력하였다.

1980년대에는 경제적인 규모가 크게 확대되고 소비생활에 이용되는 상품의 질과 종류가 다양화됨에 따라 종전과 같은 순수 민간차원의 소비자보호운동만으로는 복잡한 소비자 문제를 대응하는데 한계가 생겼다. 소비자단체의 적극적인 소비자운동은 정부의 소비자보호정책을 촉진시키는데 한 몫을 하였고 이로 인해 소비자와 관련된 최초의 단독법인 「소비자보호법」이 1980년 1월에 제정, 공포될 수 있었다. 이 법의 시행으로 민간차원의 소비자보호운동은 더욱 활성화되었고 여러 가지 국가시책이 실시되는 등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처럼 1980년대는 정부의 소비자보호정책과 민간소비자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시기였다.

  • 영화협회 소비자보호 캠페인
  • 영화협회 소비자보호 캠페인
    (1989)
  • 제6회 소비자의 날 기념식
  • 제6회 소비자의 날 기념식
    (2001)

정책적으로 소비자보호운동에 대한 지원도 활발해지고, 소비자 의식도 많이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문제 및 소비자피해는 더욱 다양하게 발생하였다. 특히 1990년대에는 국가 간의 무역장벽이 허물어져 수입제품이 많이 들어오면서 이와 관련된 안전 문제가 새롭게 제기되었다. 1997년 미국 수입산 쇠고기에서 O157병원균 검출, 수입 아이스크림에서 유해물질 검출 사건 등이 대표적인 경우였다.

한편, 소비자를 단순한 보호의 대상에서 권리의 주체로 인식해야 할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소비자보호법」은 2006년 9월 27일 「소비자기본법」으로 전면 개정되었다. 「소비자기본법」은 종래 소비자보호 위주의 소비자정책에서 탈피하여 중장기 소비자정책의 수립, 소비자안전 교육의 강화 등으로 소비자권익을 더욱 증진시킴으로써 소비자가 일방적 보호만 받는 약자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권리를 찾아갈 수 있는 자주적인 권리자임을 표현하고 있다.

(집필자 : 황은주)

참고자료

  • 네이버지식백과(http://terms.naver.com)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
  • 『식품과학기술대사전』, 광일문화사, 2008.
  •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 매일경제, 「소비자주권 지켜질까 소비자보호기본법 제정」, 197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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