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 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1968년 12월 5일 국민의 윤리와 정신적인 기반을 확고히 하고자 반포된 국민교육헌장의 앞 구절이다.
1970년대 초등학교 학생들은 수업시작 전 모두 일어서서 393자의 국민교육헌장을 다 같이 낭독했다. 못 외우는 학생이 있으면 숙제를 내기도 했다. 국민교육헌장은 도덕, 사회 시험을 칠 때마다 나오는 단골 메뉴였다. 모든 행사 개회 시에 반드시 낭독해야 했으며, 심지어 중학교 입학시험에 “국민교육헌장 글자 수가 몇 자인가”라는 문제가 시험에 나올 정도였다.
국민교육헌장이 제정된 배경을 살펴보면, 1968년 6월에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권오병 문교부장관에게 ‘국민교육의 장기적이고 건전한 방향의 정립과 시민생활의 건전한 윤리 및 가치관의 확립’을 위해서 각계각층의 의견을 총망라하여 교육장전(敎育章典)을 제정할 것을 지시하였다. 문교부에서는 박종홍·안호상·이인기·유형진 등 기초위원 26명과 심사위원 48명을 선정하였고, 그 해 7월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주재로 제1차 심의위원회를 개최하였으며, 이 헌장을 국회에 제출하기 전까지 대통령이 주관한 전체회의 4회, 국무총리가 주관한 소위원회의 4회가 개최되었다. 전문 393자의 헌장을 기초하고 심의하는 데만 철학자 박종홍, 사학자 안호상 등 내로라하는 학자 74명이 5개월 동안 참여했다. 그 결과 11월에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고, 1968년 12월 5일에 대통령이 선포했다.
국민교육헌장에는 ‘근대 산업화’와 함께 ‘인간문제’에 대한 관심을 “국민으로서의 인간”을 조성하는 것으로 연결시키려는 인식이 담겨 있었다. 국회 통과시 단 한 명의 반대표도 없었던 것은 당시에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비판 논조의 대부분은 헌장 제정 과정의 신중성, 민주성, 의견수렴이나 헌장 내용과 실천방안에 대한 것이다. 또한 국민교육헌장이 일본 명치유신 23년인 1890년 ‘교육칙어’를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써, 일본은 패전 이후 교육칙어를 폐지하였는데 20년 후에 우리가 국민교육헌장을 만들어 낭독하게 하는 것은 군국주의의 잔재라는 일부의 비난이 있었다. 반면, 우리의 국민교육헌장 제정 소식을 들은 자유중국(대만)의 총통 장제스는 “기선을 빼앗겼다”고 부러워하면서 자유중국 주재 한국대사에게 자료 수집을 당부하였다고 한다.
『경향신문』 1968년 12월 5일자 1면은 ‘국민교육헌장 선포’ 기사가 크게 실렸다. 선포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오늘부터 우리는 국민 모두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자각하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주인으로서 이 교육헌장을 생활화하자.”고 말했다. 선포식에는 대통령·대법원장·국회의장 등 3부 요인과 국무위원 전원, 학생·시민 등 30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듬해부터 국민교육헌장 전문은 초·중·고의 모든 교과서 첫머리에 실렸고, 초등학생들은 헌장을 암송해야 했다. 문교부는 국민교육헌장을 기본이념으로 하는 교육과정의 재편을 서두르는 한편, 『국민교육헌장독본』 265만부를 발간하여 각 학교와 기관에 배부하고, 초등학생을 위한 『헌장그림책』도 130만부를 발간·배포하는 등 국민교육헌장 확산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 선포일은 법정기념일로 제정돼 해마다 기념행사가 치러졌다. 199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 교육의 이념을 지배한 가장 중요한 문서가 바로 ‘국민교육헌장’이었던 것이다.
‘국민교육헌장’에 제시된 덕목은 매우 다양하다. 그 안에는 ‘자주 독립’과 ‘인류 공영’, ‘창조와 개척’과 ‘경애와 신의’, ‘자유와 권리’와 ‘책임과 의무’, ‘나의 발전’과 ‘나라의 발전’, ‘반공’과 ‘민주’ 등 상이하고 때로 상호 대립하거나 모순될 수도 있는 가치가 문맥상으로는 전혀 모순 없이 제시되어 있다. 이를 만든 박정희 대통령의 사상이 국민교육헌장 중 가장 잘 표현된 부분을 고른다면,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을 드높인다.”라는 문장으로 집약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문 곳곳에 비슷한 문맥의 문장이 등장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국민교육헌장 내용은 민족중흥을 역사적 사명으로 내걸고, 초장·중장·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장은 우리 국민이 한민족의 일원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높은 긍지와 그에 따른 투철한 사명의식을 밝혔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성과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수 있는 세계 속의 한국인으로서 결의를 다짐하였다. 중장은 국민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개인윤리·사회윤리·국민윤리의 순으로 국민 개개인이 지키고 실천해야 할 규범과 덕목을 명시해 놓았다. 종장에서는 반공 민주주의정신으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실현하고 우리의 힘으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공산주의의 도전을 이기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하며, 후손에게 물려줄 빛나는 유산을 마련하기 위해서 국민 각자가 신념과 긍지를 가지고 굳게 매진해 나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
국민교육헌장은 사회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빛이 바랬다. 정부가 국가주의의 가치를 담은 헌장을 통해 국민교육과 정신을 획일화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갔다. 1993년까지는 교육부에서 주관하여 헌장이념의 구현을 다짐하는 기념식을 베풀고, 스승에 대한 공경을 표시하는 각종 기념행사를 하였다. 그러나 1994년부터는 국민교육헌장 선포일 기념행사가 폐지됐다.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도 사라졌다. 그리고 2003년 11월 27일 국민교육헌장 선포기념일이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