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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영웅 이순신, 60년대 국민정신이 되다 현충사

문교부에서는 대통령 각하의 특별지시에 의하여 2개년 (1966,1967) 계획으로 충남 아산군 소재 아산현충사 일대의 성역조성사업을 실시하고 있는 바, 일반 국민들에게 성웅 이충무공에 대한 현도정신을 고취, 앙양하기 위하여 별첨과 같이 헌목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니 최대한 노력을 경주하여 동 사업 수행에 적극 참여하도록 할 것- 아산현충사 성역화 조성사업에 따르는 헌목운동 전개 문서 중에서(1967)

아산현충사 성역화 조성사업에 따른 헌목운동 전개 참고 이미지
아산현충사 성역화 조성사업에 따른 헌목운동 전개(1967)

현충사의 역사

우리나라 사람 중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으로 존경을 받는 역사적 인물이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존경과 선양은 조선시대부터 시작되었고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뛰어난 장군이자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서 이순신 장군의 의미는 언제나 변함이 없지만, 1960년대 이순신 장군이 국가적 차원에서 더 각별하게 선양되었다.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현충사가 특별히 성역화되어 확대된 것은 1960년대의 일이었다.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에 있는 현충사가 처음 생긴 것은 1706년의 일이다. 이순신 장군이 1598년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후 100여년간 이순신 장군을 선양하는 사업은 특별히 있지 않다가 1705년 이순신 장군이 성장했던 충청남도 아산을 중심으로 구국의 영웅인 이순신 장군을 기리기 위한 사당을 건립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충청도의 선비들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모시는 사당을 짓고 이를 당시 임금이던 숙종에게 아뢰었다. 이에 1707년 숙종이 직접 현충사라는 사당의 이름을 짓고 액자를 하사하였다. 이 현충사는 이후 150여년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모시는 사당으로 있다가 대원군 시기 전국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다른 서원들과 함께 철폐되기도 하였다.
현충사는 을사늑약에 분노한 유림들이 1906년 이 지역에 현충사가 있었다는 유허비를 세우는 정도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1932년 전격적으로 중건되었다. 그 이유는 충무공의 묘소가 경매로 일본인의 손에 넘어갈 지경이 된 때문이었다. 이에 울분을 감추지 못한 민족지사들이 ‘이충무공유적보존회’를 조직하고 동아일보사의 협력으로 민족성금을 모아 1932년 현충사를 재건하고 영정을 모셨다.
일제치하였기 때문에 크게 만들 수 없었고 탄압도 있었기 때문에 당시 현충사는 명맥을 이어가는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광복 후에도 한참 동안 아산의 현충사는 그다지 주목받는 장소는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하면서 현충사는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

현충사 행사 전경 참고 이미지
현충사 행사 전경(1963)
현충사 성역화 공사 진행현황 참고 이미지
현충사 성역화 공사 진행현황(1968)
현충사 전경2 참고 이미지
현충사 전경2(1976)

현충사 성역화

현충사는 대통령의 특별지시에 의해 성역화가 추진되었다. 현충사 성역화의 이유는 이순신장군의 ‘애국 충성의 정신을 국민정신의 귀감으로 하여 현충사를 우리 민족의 애국애족 정신의 상징적 구심점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대통령의 특별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현충사 성역화작업에는 대부분의 정부 부처가 연관되었고, 성역화사업은 시시때때로 대통령에게 특별 보고되었다. 또한 국민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고, 부족한 재원을 보충하기 위해 범국민 운동 차원에서 현충사 뜰을 가꿀 나무를 헌납하는 운동도 전개되었다.

아산 현충사 성역화 참고 이미지
아산 현충사 성역화(1966)
현충사 성지화 계획 참고 이미지
현충사 성지화 계획(1967)

현충사는 1966년 대통령의 지시로 성역화가 본격화 되어 1967년 본래의 사당(구본전) 위편에 본전을 준공하였다. 본래 있던 본전은 새로운 본전을 신축할 때 배전(拜殿)으로 이용하기로 하고 사적비(事蹟碑)와 함께 유물관 옆으로 이전하였다. 새로 지은 본전에는 1953년 장우성이 그린 것을 표준 영정으로 하여 모셨다. 오늘날 이순신 장군이라고 하면 나오는 영정이 바로 이 영정이다.
경역의 전체 면적은 16만 3096평이고, 그 안에 주요 시설로 본전·구 본전·유물관·고택·활터·홍살문·정려(旌閭), 이면의 묘소 등이 있다. 고택은 이순신 장군이 성장한 집으로 대대로 후손들이 지켜온 집인데, 몇 차례 중수 또는 개수되었다. 활터는 고택 옆에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는 곳으로 이순신 장군이 활을 쏘며 무예를 닦던 곳이다. 홍살문은 사당 경내를 표시하는 정문으로 1932년 중건 때의 자리에 있다.

박정희대통령내외분 현충사 중건 준공식 참석4 참고 이미지
박정희대통령내외분 현충사 중건
준공식 참석4(1969)
이충무공 제424회 탄신기념제전 및 현충사 중건준공식 행사에 관한 건 참고 이미지
이충무공 제424회 탄신기념제전 및 현충사 중건준공식 행사에 관한 건(1969)

2년여의 현충사 중건사업이 완성된 1969년 4월 28일에는 이순신 장군 424회 탄신일 기념을 겸하여 대통령 이하 3부요인 및 각 부처 공무원, 내외 귀빈, 기관, 단체 등이 총망라해 참석한 현충사 중건 준공식 행사를 했다.
현충사는 1968년 사적 155호로 지정되었고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에는 매년 정부 주관으로 제를 올리고 있다. 2011년에는 전시관과 교육관을 갖춘 충무공이순신기념관이 건립되었으며, 전시관에는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에 관한 각종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교육관에서는 이순신 장군 정신과 위업선양을 위한 강의와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집필자 : 김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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