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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처음 ‘자동차’가 들어온 때는 조선 시대 개화의 바람이 불던 1903년 고종 때였다. 미국 포드사의 T형 자동차를 본 왕은 ‘상여’를 연상케 한다며 멀리했고 백성들 역시 ‘쇠 당나귀’ 타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전해진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모습은 정말이지 천지개벽 수준으로 변화했다. 이젠 지하철을 타고 서울에서 경기도 여주는 물론 충청도 온양까지 갈 수 있고 서울지하철 노선만 해도 9호선, 분당선과 수인선 등 광역노선까지 합하면 22개나 된다. 거기에 서울과 수도권을 잇는 광역 버스만 64만대가 넘고 2017년 서울에서만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 이용객이 하루 평균 1천3백만 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 공포안(2005, DA1096607(13-1))참고 이미지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 공포안(2005)

교통수단이라는 건 단순히 빠르고 편리한 생활의 변화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지리적 경계 속에 갇혀 있던 사람들에게 한계를 허물고 삶을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더 넓은 세상으로, 더 자유롭게 뻗어 나갈 수 있도록 우리의 발이 되어주었던 ‘대중교통’은 과연 어떤 기록들을 가지고 있을까

대중교통 시대를 열다, 버스

대중교통은 정해진 노선과 시간 계획에 따라 운행되는 운송 수단을 정해진 요금을 치르고 이용하는 서비스를 뜻한다. 대표적으로 정규 노선을 따라 정기적으로 운행되는 항공노선, 연안여객 노선, 도시철도, 시내버스, 마을버스 등이 해당한다.

[대한뉴스 제1895호] 선진국으로가는대중교통망(1992, CEN0001865(1-1))
[대한뉴스 제1895호] 선진국으로 가는 대중교통망(1992)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교통은 아마도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르던 ‘나룻배’가 아니었을까 싶다. 1899년 5월 17일 우리나라에 서대문-청량리 간 전차가 운행되었고, 같은 해 9월 18일, 제물포-노량진 구간의 지역 간 철도가 개시되었다.

시민의 발이라 불리는 ‘버스’는 1912년, 대구에서 처음 운행이 시작됐다. 광복 이후에는 1949년 8월 16일 서울승합 등 17개의 회사가 서울시로부터 사업면허를 받은 뒤, 273대의 버스가 운행을 시작했다. 이것이 서울시 최초의 시내버스 운행이었다. 하지만 당시 버스들은 미군 폐차, 일본 중고 엔진 등을 이용해 수공업 형태로 제작되던 시기였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부가 자동차 공업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1962년 대우자동차의 전신인 신진공업사에서 16인승 버스가 개발되고 1963년부터 대량생산을 시작했다. 대형 버스의 문은 중간과 뒷부분, 2곳에 있는 형태로 규격화됐다. 그러다 1970년대에 들어서 엔진이 뒤쪽에 비치된 리어엔진 시내버스가 대도시를 중심으로 운행되면서 버스에 앞문이 생겼다. 엔진의 위치가 바뀌면서 찾아온 변화였다.

1970년대 후반 정부는 버스산업 활성화와 버스 교통 서비스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시행했다. 그중 하나가 1977년 12월 1일 도입한 버스 승차권인 ‘토큰’이다.

“당국은 승차 시 현금접수상의 불편해소, 신속한 승, 하차에 의한 안전운행, 현금 취급상의 부조리, 이른바 삥땅 제거 등의 목적으로 토큰제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토큰제의 실시는 버스 요금의 또 다른 인상 요인이 되었고 토큰이 현금과 같이 취급됨으로써 삥땅도 없어지지 않고 있다.”

<시행착오 버스토큰제>, 《매일경제》, 1978.10.17.

하지만 버스 요금 인상이 있을 때마다 시민들이 토큰을 사재기하는 일이 벌어졌고, 한때는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두 가지 색깔을 교대로 사용하기도 했다. 또 종이로 된 회수권도 사용했는데, 초·중·고·대학생·일반·경로 등으로 구별해서 발행됐다. 용돈이 부족했던 학생들은 10장으로 구성된 회수권 한 세트를 교묘하게 잘라 10장을 11장으로 사용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1996년 서울시는 교통카드제를 본격적으로 실시하면서 1999년 10월 토큰제를 폐지했지만, 당시의 교통카드는 버스와 지하철의 호환이 되지 않는 시스템이었다. 오늘날과 같은 시스템을 갖춘 교통카드가 도입된 건 2000년부터였다.

시청앞 버스정류장과 지하철(1992, DET0048102(5-1)) 참고 이미지
시청앞 버스정류장과 지하철(1992)
광화문앞 개편 버스의 모습(2004, DET0059532(3-1)) 참고 이미지
광화문앞 개편 버스의 모습(2004)

대중고통을 해결한 대중교통, 지하철

1970년대 초, 서울의 교통인구는 해마다 늘어만 갔다.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는 부족했고 정확한 지역별 교통 인구가 파악되지 않은 채 차량 배정 대수가 책정됨에 따라 아침, 저녁으로 극심한 교통난이 발생했다. 1973년 서울시 운수 당국이 추산하고 있던 서울의 하루 교통 인구는 연 720만 명으로 그중 20~30만 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교통 인구가 버스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지만, 버스는 4,500대에 불과했다. 이러한 교통체증 문제 속에서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지하철이었다. 서울역과 청량리를 잇는 우리나라 최초의 지하철 종로선은 1974년 8월 15일에 개통됐다. 1971년 4월 12일 착공하여 만 3년 4개월 만에 개통됐으며, 총공사비 330억 원이 투입되었다. 이 노선은 지하철 건설 기본계획 5개 노선 중 가장 시급한 서울역부터 청량리를 우선 개통 하였고, 성북역, 인천, 수원 등 수도권 대도시 전철로 이어질 수 있게 함으로써 수도권 반경 45km 이내의 교통 시간을 1시간 이내로 단축할 수 있었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은 개통 첫날 승객으로 45만 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었다.

지하철 개통식 참석자 테이프 절단(1974, CET0034074(10-1)) 참고 이미지
지하철 개통식 참석자 테이프 절단(1974)
지하철2호선 2단계 개통기념 시운전전동차(1982, CET0010696(7-1)) 참고 이미지
지하철2호선 2단계 개통기념 시운전전동차(1982)

지하철, 생활을 바꾸다

지하철의 등장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누군가를 만날 때, “지하철역 앞에서 만납시다”라는 이야기가 유행처럼 번졌고, 당시 지방 사람들에게 동물원보다 더 보고 싶은 서울의 구경거리가 됐다. 역 주변을 중심으로 부동산 붐이 일기도 했다. 1978년 3월 지하철 2호선이 착공했고, 1980년 2월 29일에는 지하철 3, 4호선이 착공되었다. 그리고 1984년, 지하철 2호선 전 구간이 개통되며 강남·북을 한 바퀴 도는 48.8.km의 지하철 순환시대가 열렸다. 1985년 10월 18일에는 서울 지하철 3, 4호선 전 구간이 완전히 개통되었고 서울은 지하철 1호선이 착공된 지 14년 만에 4개 노선 116.5km의 전체 지하철망을 완성, 세계 7위의 지하철 보유도시로 성장했다.

부산에서도 1985년 7월 19일, 범어사에서 서면까지를 잇는 16.1km 거리의 지하철 1호선의 1구간이 개통되었다. 이후 1990년대 들어 도시 교통이 국가적인 문제로 대두되면서 인천·대구·대전·광주 등의 6대 도시에서 지하철 건설이 활발하게 추진되었다. 지하철은 대량수송 능력뿐만 아니라 속도면에서도 대도시가 요구하는 대중교통으로서 가장 완벽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속도 혁명, 고속철도

2004년 우리나라에 고속철도(KTX)가 개통됐다. KTX는 새마을호보다 2.5배 빠른 시속 300㎞로 전국을 누볐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 40분이 걸리면서 전국은 반나절 생활권으로 좁혀졌다. 이용객도 가파르게 증가해 2004년 1,900만 명에서 2016년 연간 6,400만 명으로 3배 이상 늘었다. 2016년 12월엔 서울-수서발 고속철도인 SRT가 개통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의 일등 공신 역시 강릉선 KTX였다. 대회 기간 내내 100만 명이 넘는 승객을 안전하게 실어 나르며 우리의 고속철도 운영능력이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노태우대통령 경부고속철도 기공식 참석(1992, CET0017209(1-1)) 참고 이미지
노태우대통령 경부고속철도 기공식 참석(1992)
경부고속철도 기공식 모습(1992, CET0017209(4-1)) 참고 이미지
경부고속철도 기공식 모습(1992)

정부는 2025년까지 전국 곳곳에 고속철 단절 구간을 잇는 철도망을 확충해 전국 2시간 생활권 시대를 열 전망이다. 또한 통일부는 북측 관계자들과 함께 동해선과 경의선 철도 남북연결구간 중 북측구간을 점검하며 다가올 통일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집필자 : 최유진)

참고자료

  • 두산백과 (http://www.doopedia.co.kr)
  • 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
  • 「그칠날 기약없는 서울의 「출퇴근전쟁」, 동아일보, 1973.07.13
  • 「지하철시대 10年」, 경향신문, 1984.08.16
  • 「교통체계 지하철 중심 개편」, 매일경제, 1984.12.22.
  • 「거미줄 같은 KTX만 있다면…전국이 반나절 생활권」, 한국경제, 201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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