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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화로 가난에서 벗어나다

1960년대 누구나 먹고 사는 일이 힘든 시절이었다. 일곱 남매의 어린 장남 배진효도 마찬가지였다. 생계를 짊어졌으나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그는 서울에서 제일 크고 유명했던 제화점을 찾았다. 그곳에서 제화 기술을 습득하게 된 배진효는 1967년 7월 15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제16회 국제기능올림픽에 우리나라 첫 출전선수로 참가하고 싶었다. 스페인 국제기능올림픽 대회에 참가할 우리나라 종목은 도장, 동력 배선, 목공, 기계 조립, 목형, 선반, 판금 부문이었다. 배진효가 참가하려던 제화 부문은 빠져있었다. 공업용 기술과 달리 디자인이라는 세련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제화 부문에서 세계와 겨누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참가 종목에서 제외시켰던 것이다. 배진효는 취업하고 있던 제화점에서 항공료와 체재비를 대는 조건으로 대회에 참가하였다. 결과는 금메달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배진효의 금메달 소식에 흥분했다. 7월 27일 김포공항에서 서울시민회관까지 카퍼레이드가 벌어졌고 박정희 대통령은 출정식 때 약속했던 대로 금일봉 백만 원을 하사했다. 스페인 공주의 신발을 만든 청년이란 소문이 나면서 배진효가 일하던 제화점은 불티나게 장사가 잘됐다고 한다. 이렇듯 기능올림픽은 한 개인에게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비상구였으며 나라로서는 제조업을 통한 기능 강국이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대한뉴스 제685호] 세계에 빛낸 한국 기술(국제기능올림픽대회 파견선수단 귀국)
[대한뉴스 제685호] 세계에 빛낸 한국 기술(국제기능올림픽대회 파견선수단 귀국)(1968)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근로정신을

청소년 근로자간의 기능경기대회를 통해 최신 기술의 교류와 상호이해 및 각국의 직업훈련제도에 관한 정보교환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는 기능올림픽대회의 시작은 스페인에서였다. 1947년 스페인의 청소년들은 시들어 가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으로 도시는 폐허로 변해버렸고 청소년들은 갈 길을 잃어버리고 술이나 마약에 취해 있었다. 이때 스페인 청년연맹 사무총장을 지냈던 호세 올라오는 국가 재건을 위해 무엇보다 숙련된 기술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그 방법으로 기능 겨루기 대회를 준비하였다. 이 대회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근로의욕을 고취시키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심신을 안정시키려 했다. 1947년 치룬 첫 대회에서는 12개 부문에서 직업훈련생 4,000여 명이 참가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주최 측에서는 이 대회를 국제대회로 만들기 위해 인접한 남미 국가들의 참여를 권하였으나 반응은 좋지 않았다. 결국, 1950년 인접국인 포르투갈만이 참가한 제1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렸다. 이때 참가한 선수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선수를 합해 24명에 불과했지만, 이 대회를 바라보던 주변국들은 기술 인력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고, 1953년부터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1954년에는 국제기능올림픽대회를 관장하는 기구로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WSI : World Skills International)가 설립되었으며 2013년 아프리카 및 남미국가들까지 가입하면서 회원국은 총 65개국이 되었다. 이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청소년 기능인의 연령은 17세부터 22세 사이이며, 개최국은 WSI에서 선정하고 있다.

제17차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파견 선수단 개선 썸네일 이미지
제17차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파견
선수단 개선(1968)
제21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선수단 귀국 썸네일 이미지
제21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선수단
귀국(1973)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선수단 환영식 참석 썸네일 이미지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선수단 환영식 참석(1979)

기능 한국으로의 발돋움

1965년 김종필 민주공화당 의장은 유럽을 순방하던 중 국제기능올림픽대회의 중요성과 가치를 깨닫고 네덜란드에서 열린 제15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참관인단을 파견하게 되었다. 이 대회를 통해 회원국들의 놀라운 기능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러한 기능들이 우리나라의 공업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을 거라는 판단 하에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회원국으로 가입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를 위해 국제기능올림픽한국위원회를 설립하였는데, 설립 당시 보건사회부 소관의 민간단체인 사단법인체로 발족하였다. 이후 1982년 3월 노동부 산하 한국직업훈련관리공단(이후 한국산업인력공단으로 명칭 변경)이 발족되면서 한국위원회는 이 공단으로 통합 흡수되었다. 한국위원회는 1966년 2월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WSI에 회원국 가입신청서를 제출하였고, 전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가입이 승인되었다. 이로서 우리나라는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국제기능올림픽대회의 회원국이 되었다.

회원국이 된 우리나라는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파견할 선수들을 선발하기 위해 1966년 9월 첫 지방기능경기대회를 개최해 전국대회에 출전할 지방대표선수를 선발하였다. 같은 해 11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전국기능경기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이때 선발된 9개 직종 9명의 대표 선수들이 1967년 7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제16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참가하였다. 첫 번째로 출전한 대회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은 양복과 제화 직종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우리나라는 1978년 제24회 대회를 부산에서, 2001년 제36회 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였다. 탁월한 조직력과 운영능력으로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 후에도 우리나라는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계속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76년도 제24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서울 개최 계획안
1976년도 제24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서울 개최 계획안(1974)

1977년 7월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Utrecht)에서 열린 제23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는 금메달 12, 은메달 4, 동메달 5개를 획득해 대회참가사상 처음으로 종합 1위의 영예를 차지했다. 이는 당시의 서독이나 일본과 같은 공업선진국의 기술 실력을 이겨내고 얻어낸 쾌거였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의 연승행진은 계속되었다. 2015년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열린 43번째 대회에는 59개국 1,192명의 선수들이 통합제조, 정보기술, 항공정비, 메카트로닉스, 통신망분배기술, 공업전자기기, 냉동기술 등 총 42개의 직종에 참가하였다. 우리나라는 총 39개 직종에서 수상을 하였으며 대회 3연속 MVP를 배출하는 쾌거를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총 19연패라는 대기록을 수립하였다.

우리나라는 처음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출전했을 때 양복과 제화 부문에서만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질적인 면에서 후진성을 벗지 못하였으나 1970년대부터는 중화학공업 및 첨단산업직종으로 우승 분야가 바뀌면서 선진공업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출전하려면 17개 시도기능경기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지방기능경기대회에서 입상해야 하고 다시 이를 통해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입상을 하면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대한민국 대표로 참여하게 된다. 한 때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메달을 따고 오면 서울 시내 카퍼레이드 행사를 할 만큼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이 행사는 없어졌고 1997년 IMF위기 이후 이공계와 기능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아지면서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점차 시들해졌다. 다행히 2007년부터 대기업에서 국제대회 참가 선수들을 적극 후원하고 있고 2011년부터 정부에서는 국제기능올림픽 금메달 입상자에게 동탑산업훈장과 일시포상금 6,7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1950년 스페인에서 출범한 국제기능올림픽대회는 우리나라 청소년 기능인들에게도 꿈을 갖게 하고 기술인이 대접받는 사회가 공업선진국이 된다는 인식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우리는 세계에 유례없는 실력으로 국제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첫 종합 우승을 한 1977년 수출액은 100억 달러, 18번째 우승한 2013년 수출액은 5,596억 달러였다. 이렇듯 짧은 시간에 놀라운 성과를 이룬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며, 신화를 이루어낸 배경에는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연승을 거듭해온 청소년 기능인들이 있었다.

(집필자 : 황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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