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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남산 숲의 향기에 예술의 향기 더한 한국 대표 공연장

1950년 설립된 아시아 최초의 국립 극장인 '국립극장'은 서울시 중구 장충동, 남산의 동쪽 기슭에 위치한 문화예술 공연장이다. 대극장 ‘해오름극장’과 소극장 ‘달오름극장’, 소규모 창작 혹은 실험적인 무대 예술의 공연장 ‘별오름극장’, 그리고 야외공연을 위한 돔형 공연장 ‘KB청소년하늘극장’ 총 4개 공연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2016년 현재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을 전속 단체로 갖고 있다. 2012년 가을부터 연간 프로그램을 미리 발표하고 패키지 티켓을 판매하는 ‘레퍼토리 시즌제’를 도입해 호평을 받고 있으며, 국립극장의 대표 여름축제 '여우락(樂) 페스티벌'도 개최하고 있다. ‘여우락’은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의 줄임말로 클래식, 대중음악, 재즈, 영화·드라마 음악 등 장르와 영역을 넘어선 과감한 공연을 즐길 수 있고, 이 시대 거장들이 꾸미는 예술 무대와 우리 음악을 더욱 가까이 보고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어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2010년에는 공연예술박물관도 문을 열었다. 195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연예술자료를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공연예술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장충동 국립극장 개관
장충동 국립극장 개관(1973)

1950년 공연예술의 요람으로 문을 열다

광복과 더불어 모국어를 되찾게 된 연극인들은 열악했던 예술 활동에 새로운 활로를 찾고자 국립극장 설립운동을 전개하였고, 그 결과 1948년 8월 국립극장 창설에 대한 대통령령이 공포되었다. 1949년 10월 문교부는 국립극장운영위원회를 조직하고, 초대 국립극장장에 유치진(柳致眞)을 임명했다. 1950년 4월 29일 서울 중구 태평로에 구 부민관(府民館 : 현 서울시의회 의사당) 건물에서 1,997석 규모의 공연장으로 개관하였다. 개관 공연으로 유치진 작·허석(許碩) 연출의 ‘원술랑’을 무대에 올렸는데, 초연 당시 약 5만 명의 관람객을 유치하여 신극 사상 최대 관객동원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연이은 제2회 공연 ‘뇌우’(조우 작)는 무려 7만5천 여 명의 관객을 모아 개관공연 ‘원술랑’의 기록을 갱신하였다. 당시 서울시민이 40만 명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흥행기록이었다. 교향악단, 무용단, 오페라단, 국극단을 전속으로 두고 제3회 공연 ‘청춘의 윤리’를 준비하던 중, 6.25전쟁이 일어나 개관 57일 만에 문을 닫았다.

적자 운영 등으로 국립극장해체론까지 나와

6.25전쟁으로 인해 많은 공연예술가들이 피랍 또는 월북했고, 부산과 대구로 피난 온 예술가들은 대구의 문화극장(이후 키네마극장, 한일극장으로 개명)에 모이기 시작했다. 1952년 5월 국립극장 재건을 위한 법률안이 통과하면서 대구문화극장을 국립극장 건물로 사용하다가, 1957년 6월 1일 다시 서울로 옮겼다. 옛 부민관 건물은 국회의사당으로 사용 중이어서 명동의 시공관 건물을 서울시와 공동으로 사용하는 조건으로 재개관하게 되었다. 당시 제2대 국립극장장이었던 연극인 서항석(徐恒錫, 1900∼1985)은 국립극장 폐지론이 나오자 국회에 나가 의원들을 설복시키는 명연설을 하여 이를 저지함으로써 국립극장을 존속시켰다. 대구에 있는 동안 전속극단이 없었던 국립극장은 극단 ‘신협’ 단원을 중심으로 다시 국립극단 전속단체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1년 여 만인 1958년 유치진과 서항석의 갈등으로 유치진을 따르던 ‘신협’ 단원들이 대거 탈퇴하였고, 국산영화 붐이 일어나며 관객들이 급감하여, 적자 운영에 시달렸다,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을 거치며 문교부 소관의 국립극장은 공보부로 이관되었고, 설치법도 크게 바뀌었다. 시공관을 국립극장 전용 건물로 사용하게 되어 내부 시설을 전면 개수해 1962년 3월 명동 국립극장의 개관식을 가졌다. 새로 바뀐 규정에 따라 기존의 전속극단을 해촉(解囑)하고 새로이 국립극단을 발족시키고 국립국극단(國立國劇團), 국립오페라단, 국립무용단도 발족했다. 그러나 1960년대 국립극장은 부족한 예산과 민족예술에 대한 인식 부족, 정책 부재 등으로 연중 대부분이 대관(貸館)으로 사용되었고, 자체공연은 연간 2∽3회 뿐으로 별다른 공적을 남기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 창극(唱劇)을 정립시키기 위한 노력과 극작가 발굴사업을 한 것은 기록에 남을 일이었다.

국립극장 발레 공연 썸네일 이미지
국립극장 발레 공연(1962)
국립극장 개관식 썸네일 이미지
국립극장 개관식(1962)
국립극장 대극장 공연 썸네일 이미지
국립극장 대극장 공연(1975)

1973년 남산 기슭에 공연예술의 요람으로 둥지 틀다

국립극장은 1970년대에 획기적인 변화를 맞았다. 정부는 1967년 남산을 중심으로 장충동 일대에 종합 민족문화센터를 건립하기로 하고 국립극장을 비롯하여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양성소, 예총회관, 국립중앙도서관, 현대미술관, 세종대왕기념관 등을 착공할 예정이었다. 가장 먼저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양성소(‘국립국악고등학교’의 전신)가 1967년 12월 준공되었다. 이 건물은 이후 국립극장 별관으로 쓰였고, 현재는 별오름극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1973년 8월 국립극장 건물이 완성되어 10월 개관하면서 바야흐로 남산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신축 국립극장은 최첨단 설비와 1,494석의 대극장과 344석의 소극장을 갖추었고 국립극단, 창극단, 무용단, 교향악단, 오페라단, 합창단, 발레단, 가무단 등 8개의 전속 단체를 두었다. 1973년 10월 17일 이재현(李載賢) 작·허규(許圭) 연출의 ‘성웅 이순신’을 개관 공연으로 올렸다. 1982년 마당놀이를 위한 야외극장을 만들었으며, 1991년 ‘국립중앙극장’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그러나 다른 국립극장이 없으므로 현재도 ‘국립극장’ 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국립중앙극장 직제 중 개정령(안)
국립중앙극장 직제 중 개정령(안)(1977)

2016년 현재 국립극장은 관객과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끊임없이 변신하고 있다. 작년 말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린 ‘마당놀이 춘향이 온다(연출 손진책)’가 관객들의 호응을 받았으며, ‘NT Live(National Theatre Live)’라는 영국 국립극장이 촬영한 화제 연극 등 우수 프로그램을 도입해 상영하여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해외 우수작을 1만 5천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한글 자막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했다. 2016년 3월에는 해오름극장에서 마술사 이은결의 공연을 하는 등 젊은 관객 유도에 힘을 쓰고 있다. 해오름극장 등을 2018년 하반기까지 대대적 개보수해서 향후 전통예술 전용극장으로 변신할 계획이다.

(집필자 : 남애리)

참고자료

  • 국립극장(http://www.ntok.go.kr)
  • 국립극단(http://www.ntck.or.kr)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 두피디아(http://www.doopedia.co.kr)
  • 『달라지는 국립극장 이야기』, 도서출판 마루, 2001.6.25.
  • 『국립극단50년사(720)』, 연극과 인간, 2000.12.15
  • 한국경제TV, 「국립극장의 야심작 `마당놀이 춘향이 온다`에 관객들 춤 덩실」, 2016.1.16.
  • 국제뉴스, 「국립극장, NT Live '햄릿' '코리올라누스' 상영」, 2016.2.6.
  • 뉴데일리, 「'20돌' 이은결, 마술 최초 국립극장 공연…3일 티켓오픈」, 2016.3.2.
  • 연합뉴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개보수…전통예술 전용극장 변신」, 2016.4.4.
  • 뉴스1, 「국립극장 존폐 기로서 '레퍼토리 시즌' 성공해 기쁘다」, 2016.6.29.
  • 서울경제, 「국립극장 2016-17시즌…….신작서 명작까지 풍년이네」, 20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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