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월이면 학교는 새로운 학생을 맞느라 분주하다. 우리나라의 공교육제도는 6·3·3·4 학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초등학교 입학을 하면 6년 뒤에 중학교, 그 3년 뒤에 고등학교 입학을 하게 된다. 대학은 2년제에서 4년제까지 다양하다. 2016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나이는 만 6세이며, 보호자의 뜻에 따라 그 시기를 1년 앞당기거나 뒤로 미룰 수 있다. 입학(入學)은 학생이 교육을 받기 위해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고, 학교가 새로운 학생을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다. 학교는 신입생들이 등교하는 첫날 이들을 위해 행사를 하는데 이것이 입학식이다.
예전 서당에서는 1년 중 밤의 길이가 가장 길고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동지 즈음 입학식을 했다고 한다. 동지를 시작으로 낮의 기운이 점점 커지므로, 아이들이 학문을 깨우쳐 밝게 커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의미심장한 날짜다. 조선시대에는 입학식을 경사로 여겨 지방 교육기관인 향교에서는 입학식 때 다과회 비슷한 축제를 즐겼으며, 학부모들이 입학날 떡을 돌리기도 했다는 기록도 있다. 근대 학교의 입학식 모습을 보면, 운동장에는 만국기가 펄럭이고, 학교 정문 앞은 꽃다발을 파는 상인들로 북적거리고, 전문 사진사들이 호객행위를 하는 요란스런 잔치 분위기다. 부모님과 친척들이 축하해주기 위해 학교로 왔고 입학식장 양쪽에는 선배들이, 가운데는 입학생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학교도 귀하고 학생도 귀하던 시절이었다. 1895년 7월 소학교령이 실시되면서 오늘날의 초등학교에 해당되는 소학교가 생겼는데, 1906년 8월 27일 보통교육령이 발표되면서 명칭이 보통학교로 바뀌었다. 당시 입학식은 4월 5일이었다. 일본 학생들이 벚꽃의 개화시기에 맞추어 4월에 입학식을 하기 때문이었는지 우리도 4월에 입학식을 했다. 이후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나서, 입학식은 3월로 변경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60년대 초등학교 입학식 날 아이들은 왼쪽 가슴에 명찰과 ‘콧수건’을 달고 갔다. 콧물 흘리는 애들이 많아서 명찰 아래 하얀 손수건 윗부분을 접어서 옷핀으로 꽂고 다녔는데, 일명 ‘콧수건’이었다. 아직은 추위가 가시지 않은 운동장에서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란히!’라는 선생님 구령에 맞춰 줄을 서던 기억도 새롭다. 최근에는 초등학교 입학식 모습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교사들이 인형극을 선보이고, 교장 선생님이 동화를 읽어주고, 6학년생들이 신입생에게 사탕목걸이를 선물해주며 서로 의형제를 맺기도 했다. 요즘 입학식의 또 하나 낯선 풍경은 부모 대신 조부모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맞벌이 부모를 대신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를 돌봐주는 육아 방식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입학은 단순히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의미를 뛰어 넘는다. 아이가 학생이라는 신분을 갖는 출발점인 것이다. 아이는 ‘학생’이 되고, 부모는 ‘학부모’가 된다.
중학교도 입학시험을 치던 시절이 있었다. 명문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초등학생들도 과외수업을 하고, 밤새워 입시공부를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 더 공부를 하는 ‘13살 재수생’이 서울에만 6천 명이 넘던 시절이었다. 정부는 1968년 7월 15일 ’7.15교육개혁’을 단행, ‘어린이를 입시지옥에서 구하자’며 중학교 평준화를 발표했다. 당시 6백만 명의 초등학교 학생들 대부분은 ‘7.15 어린이 해방’이라 부르며 기뻐했지만, 명문 중학교 진입을 위해 재수를 하고 있던 6학년 재수생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1969년 2월 5일 중학교 '무시험 추첨' 첫날, 학생들이 물레를 오른쪽으로 두 번 돌리면 물레 속의 은행알이 섞이고, 다시 왼쪽으로 한번 돌리면 자신이 진학할 중학교의 번호가 적힌 은행알이 접시에 떨어졌다. 이튿날 문교부(지금의 교육부)가 TV 생중계로 배정될 학교 번호를 발표했다. 입시개혁안을 시행한 후 학생들의 실력 차이, 교원과 교실 부족, 소속감 결여 등 부작용도 있었으나, 시행 첫해 51%였던 중학진학률은 1970년 62.6%, 1971년 68.7%으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고등학교도 1973년 6월 28일 '고등학교 입시제도 개혁안'이 발표되어 1974년부터 시·도별로 연합고사를 실시, 합격자들을 학군에 따라 추첨하는 방식을 택하게 되었다. 연합고사제는 1974년에 서울과 부산에서 시작되었고, 이후 전국으로 확대 실시되었다. 아무리 어려워도 자식을 공부시켜야한다는 우리의 높은 교육열 덕분에 우리나라는 1949년 12월 「교육법」 제정·공포 시에 ‘초등학교 의무교육제도’를 일찍이 채택하였다. 이후 1984년 8월 중학교 의무교육제도가 법제화되며 중등교육도 보편화되고 덩달아서 고등학교 진학률도 높아지게 되었다.
학생들이 귀한 시절의 떠들썩한 입학식 분위기는 이제 초등학교 입학식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중·고등학교 입학식에는 부모들도 대부분 참석을 하지 않는다. 야간자율학습(일명 ‘야자’)을 실시하는 고등학교는 대부분 입학식 당일부터 10시까지 남아 ‘야자’를 한다. 대학의 입학 행사도 대학생이 귀한 예전에 더 요란했다. 1960년대 모 여대에서는 입학식날 미장원에 가고 양장점에서 쫙 빼입고 오는 학생들 때문에 지나치게 멋을 내고 오지 말라는 ‘복장검소화’ 운동을 벌일 정도였다. 1970년대부터는 1박 2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학교들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에는 대학생들이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는 시대상황 때문에 입학식에서 ‘이데올로기 특강’을 진행하기도 했다. 1990년대는 입학식을 외부에서 연예인을 초대해 화려한 잔치로 꾸미는 학교가 많았으나 1990년대 후반 IMF구제금융 사태를 거치며 점점 간소한 행사로 바뀌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2월 말에 입학식을 치루는 대학들이 점점 늘고 있다. 새내기들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조기에 수습하고 가능한 한 빨리 학업에 열중하는 풍토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입학은 또 다른 세상을 만나기 위한 관문이다. 시대에 따라 입학식 풍경은 다르지만 초등학교를 입학한 그 순간부터 우리 모두는 새로운 학문 뿐 아니라 ‘학교’라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엄청난 첫발’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