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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자존심  국가지정문화재

“국보 1호는 숭례문, 보물 1호는 흥인지문.” 학창시절, 구구단 노래처럼 이 두 가지를 외우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왜 숭례문은 국보 1호이고, 흥인지문은 보물 1호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국보와 보물의 차이를 먼저 알아야겠다. 국보(國寶)는 말 그대로 국가의 보물이다. 즉 보물 중의 보물을 의미하는데, 그렇다면 보물 중의 보물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문화재보호법(안)(1961, BG0000241(15-1)) 참고이미지
문화재보호법(안) (1961)

국보와 보물의 차이

현행 「문화재보호법」 제23조(보물 및 국보의 지정)에 따르면 “① 문화재청장은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유형문화재 중 중요한 것을 보물로 지정할 수 있다. ② 문화재청장은 제1항의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인류문화의 관점에서 볼 때 그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보로 지정할 수 있다. ③ 제1항과 제2항에 따른 보물과 국보의 지정 기준과 절차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라고 되어있다.

이 법령을 놓고 숭례문과 흥인지문을 비교해보면 숭례문이 왜 국보로 지정되었는지 알 수 있다. 숭례문은 조선 초(1398)에 건립돼 현존하는 도성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됐다. 흥인지문(1869년)보다 470년 앞서 제작된 것인데, 절제미와 균형미가 조선 건축의 전형적인 미학을 담고 있어 건축사적 가치도 크다. 그것이 숭례문이 우리나라 국보 1호로 선정된 이유이다. 서울의 4대 문 가운데 문화재로 지정된 건 숭례문과 흥인지문뿐이다. 그렇다면 ‘지정문화재’란 무엇일까

  • 숭례문(1973, CET0066126(2-1)) 참고 이미지
  • 숭례문(1973)
  • 흥인지문(1987, CET0073848(1-1)) 참고 이미지
  • 흥인지문(1987)

지정문화재의 의미

「문화재보호법」상 '지정문화재'는 문화재청장이 지정하는 국가지정문화재와 특별시장·광역시장 또는 도지사가 지정하는 시도지정문화재가 있다. 형태에 따라서는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자료로 분류된다.

'국가지정문화재'는 국보, 보물, 중요민속자료,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중요무형문화재로 분류된다. '보물'은 건조물·전적·서적·고문서·회화·조각·공예품·고고자료·무속용품 등의 유형문화재 중 중요한 것을 문화재청장이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국보'는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인류문화의 견지에서 그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한다.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크거나 제작연대가 오래고 특히 그 시대의 대표적이거나 제작 의장이나 제작기술이 특히 우수하여 그 유래가 적거나 형태와 품질은 물론 용도가 현저히 특이한 것이거나, 저명한 인물과 관련이 깊은 것, 그가 제작한 것을 국보로 지정하고 있다.

언제부터 국가문화재를 지정하기 시작했을까

“문화재 실태조사는 해방된 지 10년 만에 문교부에서 처음 단행되는 것이라 하며 (중략) 이번 국보,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을 보호키 위하여 국립박물관장 김재원 씨를 비롯한 21명으로 구성하는 문화재 실태조사위원회를 만들어 문화재 애호 기간을 이용하여 일제히 지정문화재를 현지 조사할 것이라고 한다.”

<문화재 보호를 지향>,《경향신문》, 1955년 10월 20일

정부는 1955년 국보 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회를 발족시켰다. 보존회는 일제가 지정한 581건의 보물 중 북한에 있는 것을 빼고 모두 국보로 승격시켰다. 이어 1962년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하면서 이를 국보와 보물로 나누었다. 숭례문을 국보 1호(1962. 12. 20 지정), 원각사지 10층 석탑을 국보 2호, 동대문을 보물 1호, 보신각종을 보물 2호로 각각 지정했다. 1985년, 익산시 웅포면 송천리 함라산에 자리한 숭림사 보광전이 국가지정문화재 재지정 작업을 통해 보물 825호로 지정되었다.

[대한뉴스 제1471호] 문화재관리의 새 방향(1984, CEN0001345(4-1)) 참고 이미지
[대한뉴스 제1471호] 문화재관리의 새 방향(1984)

큰 충격을 안겨준 사기사건

지금까지 국보가 해제된 사례는 두 차례 있었다. 하나는 ‘태종 11년 이형원종공신록권부함도’가 더 높은 가치를 가진 것으로 판단되는 좌명공신녹권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점을 감안 2010년 보물(1657호)로 강등된 것이고(2010.08.25. 고시), 다른 하나는 1992년 국보 274호로 지정되었던 ‘귀함별황자총통(龜艦別黃字銃筒, 1596)’이 위작임이 밝혀져서 국보지위가 박탈된 것이다. 1992년 8월 한산도 앞바다에서 발굴된 ‘귀함별황자총통’은 거북선에서 사용된 대포로 추정되었으나 해군 충무공해전유물발굴단장과 골동품상이 짜고 벌인 사기극으로 밝혀지면서 한국 국보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1996년 가짜 유물임이 최종 확인되면서 국보 지위를 박탈당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지정문화 재평가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정부는 1996년 당시 광복 50주년 기념사업 중 하나인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지정문화재 503건에 대해 재평가 작업을 거치게 된다. 그 결과 보물 1건, 사적 8건 등 9건에 대해 국가 지정문화재 지위를 박탈, 시·도 지정 문화재로 격하했고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보물 6건을 국보로 승격했다. 또, 이 과정에서 잘못 쓰인 문화재 7건의 명칭을 공식적으로 변경하였다. 대표적으로 국보 1호였던 남대문의 명칭이 ‘숭례문’으로, 동대문의 이름이 ‘흥인지문’으로 바뀌었다.

국보 11호에서 발견된 또 다른 보물

1997년 전북 익산에 위치한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석탑이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1999년 문화재위원회는 미륵사지 석탑을 보수 정비하게 된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 시멘트를 마구잡이로 부어 흉물스럽게 변했던 석탑을 정밀 조사를 거쳐 해체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2009년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으며 미륵사지석탑이 백제 무왕 때인 639년에 건립됐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발견된 사리장엄구는 출토 9년 만인 2018년 6월 보물로 지정되었고 당대 최고의 금속공예술을 보여주는 유물인 데다 봉안 당시 상태도 잘 보존되어 있어 국보로 다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2018년 미륵사지 석탑은 약 20년 동안의 보수작업을 마쳤다.

  • 익산미륵사지석탑(1973, CET0054254(1-1)) 참고 이미지
  • 익산미륵사지석탑(1973)
  • 익산미륵사지 당간지주(1973, CET0061088(1-1)) 참고 이미지
  • 익산미륵사지 당간지주(1973)

지정대상을 넓힌 국가무형문화재

2015년 본래 기능과 예능 종목만 지정되었던 국가무형문화재는 「무형문화재법」이「무형문화재법」에서 독립해 제정되면서 전통지식이나 생활관습, 구비 전승도 지정 대상으로 하였다. 그 결과, 2016년 이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종목은 예능, 기능과 관계없는 '제다'(製茶), '씨름', '김치 담그기', '해녀'였다.

  • 무형문화재 현판식(1981, DET0054959(4-1)) 참고 이미지
  • 무형문화재 현판식(1981)
  • 공연하는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1988, DET0043883(6-1)) 참고 이미지
  • 공연하는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1988)
  • 강릉단오제 그네뛰기(1995, DET0051886(28-1)) 참고 이미지
  • 강릉단오제 그네뛰기(1995)

2018년 5월, 문화재청은 갯벌을 활용한 고유한 소금 생산 기술인 '제염'(製鹽)과 우리 가옥의 난방 기법인 '온돌문화'를 국가무형문화재 제134호와 제135호로 각각 지정했다. ‘제염’은 한반도 삼면에서 갯벌·바닷물·햇볕·바람을 이용해 소금을 생산하는 만큼 갯벌 생태와 어촌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소금으로 음식 저장과 발효를 했던 전통 음식문화를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소재라는 점에서 문화재 가치를 인정받았다. ‘온돌문화’는 기원전 3세기부터 1세기 사이 만들어진 원시 온돌 유적이 곳곳에서 발견되는 만큼 약 2천년의 역사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서양의 벽난로와 다르게 연기를 굴뚝으로 바로 내보내지 않고, 아궁이에 불을 때면 열기가 구들장 밑으로 지나가게 하면서 방 내부에 연기를 발생하지 않고 장시간 따뜻함을 유지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난방 기술이다. 혹한의 환경에 적응하고 대처해온 우리 민족의 창의성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집필자 : 최유진)

참고자료

  •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http://portal.nrich.go.kr)
  • 「'귀함별황자총통'국보지정」, 한겨레, 1992.09.05.
  • 「거북선총통」사기극, 동아일보, 1996.06.19.
  • 「국보 익산 미륵사지 석탑 방치 안타까워」, 동아일보, 1997.04.05.
  • 「20년 대수술…콘크리트 속 제모습 찾은 미륵사지 석탑」, jtbc뉴스, 2018.
  • 박문각 시사상식편집부, 『최신시사상식 핵심 용어사전』, 박문각, 2014.
  • 김규회, 『상식의 반전 101』, 끌리는책,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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