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깃하고 꼬불꼬불한 면발, 시원하고 얼큰한 국물이 떠오르면 찾게 되는 라면. “물 550ml(3컵 정도)를 끓인 후 면과 분말스프, 후레이크 스프를 같이 넣고 4분 30초간 더 끓이세요.” 라는 글만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간단히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라면은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에게 안성맞춤인 즉석 음식이다. 라면은 종류도 다양하여 비빔라면, 짜장라면, 스파게티라면 등 다양한 종류의 라면이 취향이 다른 소비자를 만족시키며 판매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라면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중국으로, 2012년 기준으로 연간 440억 3천 만 개를 소비하고 있다. 그러나 1인당 라면 소비량은 5일에 1번, 1년에 80개 정도를 먹고 있는 우리나라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라면은 간식이나 식사대용으로 찾는 간편 음식이다.
라면이 우리나라에 처음 선보인 것은 1963년 9월 15일 출시된 삼양라면이었다. 식량난이 극심했던 시기에 일본에서 라면을 시식했던 전중윤은 식량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을 갖고 라면 생산을 추진했다. 정부로부터 돈을 빌려 일본의 묘조식품(明星食品)에서 라면생산 기계 2대를 수입하여 삼양라면의 생산을 시작하였다. 첫 출시 당시 삼양라면은 100g에 10원이었는데, 커피 한 잔에 35원이던 시기였으므로 매우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러나 처음에 라면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밥과 국, 반찬을 먹어야만 끼니를 해결했다고 여기던 당시 사람들에게 밀가루로 만든 인스턴트식품인 라면이 한 끼 식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라면의 꼬불꼬불한 모양의 면발도 익숙하지 않았고, 라면이라는 명칭의 ‘면’을 일종의 ‘천’이나 ‘실’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오해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60년대부터 쌀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시작된 정부의 ‘혼․분식 장려정책’은 라면 판매량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절미운동과 혼․분식을 늘리는 식생활개선 사업계획을 세운 정부는 대대적인 캠페인과 각종 웅변대회, 그림대회 등을 통하여 쌀보다 영양이 풍부한 잡곡과 밀가루음식을 많이 먹어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출시된 라면은 처음에는 판매가 저조했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혼․분식 장려정책과 라면 무료시식회 등을 통해 맛이 좋다는 평을 받으면서 판매량이 급증하게 되었다. 1966년 한 해 동안 240만개가 판매되었던 라면은 1969년에는 1,500만 개가 팔렸고, 몇 년 만에 무려 300배가 넘는 판매실적을 올렸다. 그리고 2012년 현재 우리나라의 라면 판매량은 35억 2천만 개에 달하고 있다.
삼양라면이 출시된 지 2년 후 경쟁 라면인 롯데라면이 등장했다. 1965년 출시된 롯데라면은 농심라면의 전신이다. 삼양라면과 농심라면은 서로 경쟁하며 라면의 맛과 질을 향상시켰다. 꾸준히 판매량이 증가되던 라면은 1989년 11월 삼양라면의 ‘우지(牛脂)라면’ 파동이 일어나면서 큰 타격을 받았다. 공업용 쇠고기 기름을 사용하여 라면을 만들었다는 소식은 소비자들을 경악하게 하였다. 이 우지파동으로 삼양라면은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직원 1000여 명이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삼양라면은 1997년 8월 7년 8개월의 법정투쟁 끝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로 값싼 밀가루가 도입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부족한 쌀의 소비를 줄이고 식량 소비의 패턴을 바꾸고자 주도한 분식장려운동으로 많은 국민들은 라면을 사먹기 시작했다. 그래서 라면은 어려운 시절 가난의 한 모습으로 기억되기도 하고, 훈훈한 추억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지금의 라면은 대체식량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기호식품의 하나가 되어 여전히 우리의 출출한 배를 채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