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메뉴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내용 바로가기

하단정보 바로가기

조선의 흥망을 함께 한 창덕궁(昌德宮)

창덕궁은 1405년 태종 때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조선의 궁궐로,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동궐(東闕)'이라고도 불렸다. 북한산과 매봉산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창덕궁과 연결되어 있어 자연 지형과 조화를 이루었다. 외전으로는 정문인 돈화문, 정전(正殿)인 인정전과 그 주변의 인정문·숙장문·진선문과 선정전 등이 있고, 내전으로는 대조전과 희정당 등이 있는데 지어질 당시 창덕궁의 규모는 외전 74칸, 내전 118칸의 규모였다. 내전의 뒤쪽으로는 연회, 산책, 학문을 할 수 있도록 넓은 공간에 후원을 조성하였다. 창덕궁에는 관청지역을 궁궐 안에 배치하여 왕이 효율적으로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한 궐내각사가 있었다. 이곳에는 비서실인 승정원, 왕과 왕족의 의료를 담당했던 약방(내의원)을 비롯하여 왕의 칙령, 문서, 경서, 사적 관리 및 왕의 자문역을 맡았던 옥당(홍문관) 등이 있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모두 불타버렸는데 1610년 광해군이 창덕궁을 먼저 복원하면서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 때까지 약 270여 년간 가장 오랫동안 정궁 역할을 하였다. 긴 세월만큼 흥망성쇠의 사연을 많이 담고 있는데 1408년 태조가 승하했으며 효종, 현종, 영조가 즉위식을 가졌다. 또한,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일가가 생을 마감한 곳이기도 하다. 조선 말기 서구의 문물을 도입하면서 창덕궁에도 자동차 차고가 설치되었고, 일부 전각들의 내부를 서양식으로 개조하고 전등을 사용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돈화문 앞에 도로가 생겨 창덕궁과 종묘가 갈라졌으며, 주요 전각 외의 여러 건물이 헐리며 궁궐이 크게 훼손되었다. 광복 후에도 한동안 방치되어 주변에는 민가와 학교, 대형 건물이 들어섰는데, 1990년대 와서야 복원 작업이 진행되었다.

창덕궁에는 1826년~1828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조감도 형식으로 그린 대표적인 궁궐 건축 그림 ‘동궐도(국보 제249호)’가 남아있어, 창덕궁의 건물배치와 건물형태 등 궁궐건축을 연구·복원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 창경궁과 함께 인정전 등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하였으며, 광복 후에도 일부 개방하다가, 1980년 훼손되었던 궁내시설을 정비하기 위해 궁의 관람을 제한하였다. 2010년 5월 1일부터 후원 등 일부를 제외하고 자유관람이 가능하게 되었다.

창덕궁 비원 보수공사 후 일반인 공개 창덕궁 비원 보수공사 후 일반인 공개 창덕궁 비원 보수공사 후 일반인 공개 창덕궁 비원 보수공사 후 일반인 공개 창덕궁 비원 보수공사 후 일반인 공개
[대한뉴스 제1234호] 창덕궁 비원 보수공사 후 일반인 공개(1979)

창덕궁은 1963년 1월 18일 사적 제122호로 지정되었고, 인정전은 국보 제225호로 지정되었다. 그 외 보물로 지정된 돈화문·인정문·선정전·희정당·대조전·구선원전 등의 건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령 700년의 향나무 한 그루와 수령 600년의 다래나무 한 그루가 있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물들과 조경미가 뛰어난 후원이 있고 오랜 기간 왕궁으로 사용하여 다양하고 복잡한 왕실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창덕궁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창덕궁 인정전
  • 창덕궁 인정전
    (1958)
  • 창덕궁안의 전각
  • 창덕궁안의 전각
    (미상)

규모와 품위 갖춘 창덕궁의 상징, 돈화문과 인정전(仁政殿)

창덕궁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정문인 돈화문이다. 1412년에 세워졌다가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것을 1609년 광해군 때 복원하였다. 화려하게 단청된 이층 누각으로, 앞에 넓은 월대(月臺, 궁궐의 주요 건물 앞에 돌로 쌓은 널찍한 대)를 두어 궁궐 정문의 위엄을 갖추었는데, 왕의 행차 같은 의례가 있을 때 돈화문을 사용했고, 신하들은 서쪽의 금호문으로 드나들었다.

창덕궁의 정전(正殿)인 인정전은 왕의 즉위식이나 외국 사신 접견 등 국가의 주요 공식 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1405년(태종 5년) 세워진 뒤 화재로 몇 차례 복원을 거쳤고 지금의 건물은 1804년 지은 것이다.

대한제국 때인 1908년(융희 2년), 순종황제가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서양식으로 개조하였는데 창호를 황제의 상징인 황색으로 칠하고, 바닥에는 서양식 마루를 깔고, 유리 창문으로 바꿔 커튼을 달고 전등도 설치했다. 1985년 1월 8일 국보 제225호로 지정되었다.

창덕궁 인정전 행각지 발굴조사보고서 창덕궁 인정전 행각지 발굴조사보고서 창덕궁 인정전 행각지 발굴조사보고서
창덕궁 인정전 행각지 발굴조사보고서(미상)

왕의 집무실인 ‘편전’으로 쓰인 선정전과 희정당

선정전은 인조반정 때 소실되었다가 1647년 다시 지어진 건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왕들이 신하들과 만나 나랏일을 논의하던 공식 집무실을 ‘편전’이라 하는데, 창덕궁 내 유일하게 지붕이 청색 기와로 되어 있다. 선정전의 ‘선정(宣政)’이란 ‘정치와 교육을 널리 펼친다’는 뜻으로 어진 정치를 베푼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선정전 동쪽에는 희정당이 있다. 희정당은 초기에는 왕의 침전으로 사용되다가 조선 후기 편전으로 사용되었다. 본래 이름이 숭문당이었으나, 1496년(연산 2년) ‘화평하고 느긋하여 잘 다스려지는 즐거운 정치’라는 의미인 ‘희정당(熙政堂)’으로 바꾸었다. 희정당은 1985년 보물 제815호로 지정되었다.

비극적 역사가 담겨 있는 대조전과 낙선재

대조전은 창덕궁의 정식 침전(寢殿)으로 원래 왕비의 공간이었다. 왕자와 공주가 탄생하고 교육을 시키던 곳으로, ‘크게 만든다’는 뜻의 ‘대조전(大造殿)’이란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1910년 8월 22일 대조전의 부속 전각인 ‘흥복헌’에서 조선조 마지막 어전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주권을 일본에 빼앗긴 ‘한일병합’이 결정되었고, 519년 역사의 조선 왕조가 막을 내리게 된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1926년 순종황제는 대조전의 흥복헌에서 승하했다. 대조전은 1917년 화재로 불탄 뒤, 1920년에 경복궁의 침전인 교태전을 옮겨와 다시 지으며 내부를 서양식으로 개조하였으며, 순정효황후 윤씨의 침대를 비롯한 근대 시기의 고가구 등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낙선재는 창덕궁의 동남쪽과 창경궁이 연결되는 곳에 자리 잡은 건물로 1847년(헌종 13년) 후궁 경빈 김씨를 위하여 지은 것이다. 낙선재(樂善齋)는 ‘선한 일을 즐겨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1926년 순종이 승하한 뒤 계후인 순정효황후(윤황후)가 1966년까지 낙선재에서 여생을 보냈고, 영친왕과 그의 아내 이방자 여사와 덕혜옹주 등 대한제국의 황실 가족들도 낙선재 일곽에서 마지막까지 거주했다. 영친왕의 아들 이구의 장례식도 2005년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 창덕궁 대조전
  • 창덕궁 대조전
    (1958)
  • 창덕궁 풍경
  • 창덕궁 풍경
    (1991)
  • 창덕궁 낙선재
  • 창덕궁 낙선재
    (1996)

뛰어난 자연미 자랑하는 창덕궁 후원

왕들의 휴식처로 사용되던 후원은 1405년(태종 5년) 창덕궁을 창건할 때 조성하였으며, 창경궁과도 통하도록 하였다. 후원은 금원(禁苑) 또는 비원(秘苑)이라고 하였는데 ‘비원’은 일제 시기의 용어이다. 조선시대 궁궐의 조경 수법을 볼 수 있는 이곳은 현재도 옛 모습을 거의 잃지 않고 있으며, 100여 종 이상의 수종에 300년이 넘는 거목들과 연못·정자 등이 조화를 이루도록 함으로써 건축사적으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부용지의 전각 중 하나인 주합루는 역대 국왕들의 글과 어필을 보관하던 곳으로 정조는 관료들과 가끔 시짓기 시험을 열어, 제 시간에 시를 못 지으면 부용지 가운데의 작은 섬으로 귀양을 보냈다는 기록도 있다. 또한, 창덕궁 내 유일한 초가지붕인 청의정(淸義亭)은 1636년(인조 14년)에 세웠는데, 정자 앞에 벼를 심고, 수확 후에는 볏짚으로 정자의 지붕을 잇게 하였다. 이는 농사의 소중함을 백성들에게 일깨워주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집필자 : 남애리)

참고자료

  • 『조선의 궁궐』, 조선일보사, 1998.
  • 『궁궐ㆍ유교건축』, 솔, 2004.
  • 『창덕궁』, 대원사, 2004.
  • 『조선의 참 궁궐 창덕궁』, 눌와, 2006.
  • 『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 효형, 2006.
  • 『조선시대 궁궐용어해설』, 문화재청, 2009.
  • 『창덕궁』, 주니어김영사, 2012.
  • 문화재청 (http://www.cha.go.kr)
  • 창덕궁 (http://www.cdg.go.kr)
  • facebook
  • twitter
  • print

주제목록 보기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
타
파
하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