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터져라 민주화를 외치고, 막걸리 한 사발에 국가와 미래를 걱정하던 곳. 젊음이 있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서로에게 응원을 보내던 곳. 흔히 386세대라 불리는 1960년대 생들에게 청년 시절 대학로는 젊음과 낭만이 가득한 곳이었다. 물론 이후 세대들에게도 대학로는 추억어린 공간이다. 대학로에서의 미팅, 그리고 연극과 뮤지컬 공연 관람, 시원한 생맥주 한 잔 들이키던 추억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서울 대학로가 위치한 곳은 조선시대부터 교육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태조 7년 요즘의 국립대학격인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이 현재의 명륜동과 혜화동 일대에 설치되었고 이 구역을 ‘가르침을 높이 여긴다’라는 뜻을 담아 ‘숭교방’이라고 명명하였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는 숭교방 동쪽이라는 의미로 ‘동숭(東崇)동’으로 행정구역이 개명되었다.
일부 애국지사들이 이곳에 우리 청년들의 교육을 위한 대학을 설립하고자 조선민립대학 설립운동을 펼쳤지만 일제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대신 조선총독부가 식민사회에 맞는 조선인을 만들겠다는 교육 목표 하에 「조선교육령」을 개정하여 1924년 경성제국대학을 동숭동과 연건동에 설립하였다. 경성제국대학은 당시 한반도에서 유일한 4년제 대학이었다. 경성제국대학을 동숭동에 설립한 것은 당시만 해도 도심을 벗어난 조용한 환경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미 이곳에 공업전습소, 대한의원, 부속의학교 등 기존의 교육시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경성제국대학이 국립서울대학교로 개편되면서 대학로 주변에는 서울대학교의 본부와 법과대학, 문리과대학, 의과대학, 미술대학 등의 단과대학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때부터 서울대학교가 관악구 신림동으로 이전할 때까지인 1975년까지 대학로는 대학생과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젊음과 낭만의 거리가 되었다.
서울대학교가 동숭동에 있을 때 현재 대학로는 ‘문리대길’이라 불렸으며, 그 길에 북악산의 남쪽 사면을 흘러내려와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하천인 흥덕동천이 있었다. 당시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그 하천을 '세느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975년 의과대학을 제외한 모든 단과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이주한 후 주택공사에서 고층아파트를 세우려고 했으나, 학교와 사회 각계의 비판 여론이 만만치 않아 그 계획은 철회되었다. 대신 과거 문리대학 부지 일부에 ‘마로니에 공원’이 조성되고 나머지 부지에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을 시작으로 문예진흥원미술관,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등이 들어섰다.
서울대학교 동숭동 캠퍼스 건물 가운데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서울대학교 본관으로 한때 문화예술진흥원의 청사로 사용됐으며 현재는 ‘예술가의 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1931년 10월 10일에 준공된 이 건물은 우리 건축계의 선구자인 박길룡이 맡았으며 1981년에 사적 278호로 지정되어 대학로가 대학로의 유래를 설명해주는 근거가 되고 있다.
대학로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마로니에 공원은 마로니에 나무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과거 서울대학교 문리대 건물 바로 앞에 마로니에 나무가 있었다. 이 나무는 당시 일본인 법문학부 교수가 지중해 지역에서 3그루를 가져와 경관 조성을 위해 이곳에 심었다. 여기에 은행나무, 느티나무 등 10여 그루의 나무와 함께 개나리, 라일락 등도 심어져 지금의 마로니에 공원을 이루게 됐다.
시기와 역사적인 상황에 따라 구호는 달라졌지만 대학로는 정의를 추구하고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학생들의 시위와 저항의 공간이었다. 학생운동이 필요할 때마다 학생들은 힘을 합쳐 한 목소리를 내었고, 대학로 등지에 모여 연합행사를 치루기도 하고 집회를 열기도 했다. 한편, 1985년 정부에서는 대학로를 ‘차 없는 거리’로 만들었고 이화사거리부터 혜화로터리에 이르는 폭 40m 6차선의 길이 1.2km 구간을 이 일대의 특성에 맞추어 ‘문화예술의 거리’로 조성하였다. 이때 많은 문화단체와 샘터파랑새극장, 마로니에극장, 바탕골소극장 등 10여개의 소극장들이 개관하였다. 이러한 공간에서 연극, 영화, 음악, 뮤지컬 등의 공연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다양한 문화 활동들이 기획되어 대학로는 명실상부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예술의 거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차 없는 거리가 폐지되면서 일시적으로 침체되었던 대학로의 분위기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연극·영화의 활성화를 위해 마련된 1991년 ‘연극영화의 해’를 기점으로 대학로에는 소극장과 문화예술단체의 수가 예전보다 훨씬 증가하였고 문화산업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뮤지컬 등 상업적인 공연이 집중되면서 대학로에는 새로운 공연 바람이 불었다. 현재 대략 150여개의 공연장이 있는 대학로는 소극장 밀집 지역이자 공연예술의 중심지이며, 예술가들의 새로운 창작활동이 시작되는 창작과 실험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대학로에는 역사를 간직한 근현대 문화유산도 많다. 서울대학병원의 전신으로 사적 제248호인 대한의원,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6호인 이화장, 방송통신대 내에 있는 사적 제279호인 구 공업전수소 본관, 등록문화재 제357호인 장면가옥, 도산 안창호가 조직한 흥사단 본부, 낙산공원 등이 있다. 서울시는 문화재로 등록되지는 않았지만 서울의 근현대문화유산 중 미래세대에게 전할 만한 유·무형의 보물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는데, 대학로의 서울대학박물관, 학림다방, 진아춘, 아르코미술관 등이 해당된다. 이 가운데 1956년에 문을 연 학림다방과 1933년부터 짜장면을 팔아온 중국음식점 진아춘은 젊은 시절 대학로를 찾았던 사람들에게는 추억의 장소이며 현재의 젊은이들에게는 과거의 시간을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문화와 역사 그리고 예술이 존재하는 대학로는 2004년 5월 8일 서울에서 두 번째로 문화시설이 밀집되어 있거나 문화예술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문화지구’로 지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