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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몇 년도일까? 연호

올해는 몇 년도일까? 하고 묻는다면 대부분 2천 몇 년으로 시작하는 연도를 답할 것이다. 그런데 이 2천 몇 년도란 연도는 어디서부터 기원해서 2천 몇 년인 것일까? 그리고 언제부터 우리는 이 2천으로 시작하는 연도를 자연스럽게 쓰기 시작한 것일까? 일상화되어 당연하게 쓰고 있는 이 2천년으로 시작하는 연도는 사실 서기(西紀)로, 서양에서 쓰는 연도를 그대로 따라 쓴 것이다. 이 서기는 서력 기원(西曆 紀元)의 준말로 예수의 출생년을 원년으로 하여 이후의 연도를 세어나간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에는 이 서기를 쓰지 않았을텐데 그 전에는 어떤 식으로 연도를 따졌을까?

연도를 세어가는 법을 연호라고 하는데, 우리가 서기를 연호로 쓰기 시작한 역사는 사실 알고 보면 그리 길지 않다.

전근대시대의 연호

서양에서는 기독교가 유럽 전 지역으로 퍼진 이래 서력기원, 즉 서기를 계속 써왔지만 동양에서 연호는 통치자나 국가의 변화 등에 따라 달라졌다. 연호란 흔히 중국에서 비롯되어 한자를 사용하는 아시아의 군주국가에서 쓰던 연도를 세는 법을 일컫는 경우가 많다.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일본 등에서는 군주의 변화에 따라 연호를 바꾸어 썼다. 예를 들면,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연호를 광무(光武)로 정한 1897년은 광무 1년이 된다. 독자적인 연호를 쓴다는 것은 나라의 위상을 높힌다는 의미였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즉위한 391년부터 사용한 영락(永樂)이 문헌에 기록된 최초의 연호이다. 발해는 대조영이 건국한 699년에 천통(天統)이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고려를 세운 왕건도 천수(天授)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고, 4대 광종은 광덕(光德)·준풍(峻豊)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중국의 연호를 받아썼다.

조선왕조는 개국 때부터 독자적인 연호를 쓰지 않고 중국의 연호를 쓰다가 1895년부터 독자적으로 건양(建陽)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1897년에는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의 나라를 선포하면서 연호를 광무라 하였고, 순종 황제가 즉위하면서는 연호를 융희(隆熙)라고 썼다. 이 대한제국기 연호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침략을 받으면서 사라졌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천황의 연호를 따라 연도를 세었다.

단기의 시대

우리나라에 오늘날과 같은 서기가 쓰인 것은 1945년 광복이 되면서 시작된 3년간의 미군정기가 시초였다. 1945년부터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 서기가 쓰였고 공문서에도 서기로 기록되었다.

그러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같은 해 9월 25일 공포된 『연호에 관한 법률』에서 “대한민국의 공용연호는 단군기원으로 한다.”고 하여 단군기원(檀君紀元)이 국가적인 공용연호로 채택되었다.

연호에 관한 법률 참고 이미지
연호에 관한 법률(1948)
공용연호 제정에 관한 건 참고 이미지
공용연호 제정에 관한 건(1948)

단기(檀紀), 즉 단군기원은 단군왕검이 즉위하여 단군조선을 개국한 해인 기원전 2333년을 원년으로 하는 기원이다. 제1공화국 문서에 단기 4천 몇 년이라고 연도가 쓰여진 것이 바로 이것이다. 단군기원은 학계에서는 이론이 분분하였지만, 여러 가지 역사적 자료를 참고하여 단군이 기원전 2333년에 나라를 세웠다고 정하고 이때부터 우리 민족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본 것이다. 단기는 이 때를 기원으로 연도를 세어나가자는 취지였다. 단군기원을 뒷받침해 주는 고문헌으로는『삼국유사』와『제왕운기』가 가장 오래된 것이며, 후대의 것으로는『세종실록』지리지,『동국통감』, 권람의 『응제시주(應制詩註)』등이 있다. 근대에 와서 단기는 1909년 우리나라 고유의 신앙을 체계화한 대종교에서 쓴 것이 처음이었다. 대한민국 수립 후 단기 연호를 쓰게 된 것은 우리나라의 자립과 위상을 높힌다는 의미와 함께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는 민족 화합의 의미도 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단기 연호는 외국과의 교류 등에서 다소간 불편을 낳았다. 우리나라 문서에는 단기를 쓰다가도 외국 문서에는 서기를 쓰기도 하였고 어떤 국내문서에는 이를 함께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서 국제기준에 맞는 연호 사용에 대한 요구가 제기되었다.

오늘날의 연도 표기가 공식화되기까지

단기 표기의 연호는 1961년 5.16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서기 표기를 공식적으로 채택하면서 사라졌다. 1961년 12월 2일 공포된 「연호에 관한 법률」에서 “대한민국의 공용연호는 서력기원으로 한다.”고 하고, 다시 그 부칙에서 “본 법은 서기 1962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 법률 제4호에 관한 법률은 이를 폐지한다. 이 법 시행 당시의 공문서 중 단기로 표시된 연대는 당해 연대에서 2,333년을 감하여 이를 서력연대로 간주한다.”고 법제화함으로써 마침내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서력기원이 채택된 것이다.

연호에관한법률안 참고 이미지
연호에관한법률안(1961)

정부는 역사학계에 자문을 구하고 연호를 바꿀 경우에 대한 여러 가지 사회적 장단점을 비교한 끝에 결국 단기에서 서기로 연호를 바꾸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연호를 바꾸는 데 필요한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미 만들어진 공문서의 연호는 그대로 두고, 때로는 문서의 부분만 고치는 식으로 하거나, 이미 발행한 교과서의 단기 연호는 교사의 지도로 서기로 변경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서기로 해를 세는 방법은 이후 빠르게 정착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한편, 단군기원이 비록 1962년부터 폐지되기는 했으나, 우리 민족사의 유구함을 실증해 주는 근거가 되는 것으로 평가하여 현재 단군기원을 부활하자는 주장도 있다.

(집필자 : 김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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