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층 이상의 세대라면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부는 갈대 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란 1980년대 히트곡을 기억할 것이다. 1982년도에 나온 이 노래는 당시 대한민국 서울, 특히 강남 개발로 일어난 아파트 건설 붐과 연결되어 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아파트의 건설과 인기는 우리나라 대도시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언제부터 지어져 어떤 역사를 품고 오늘날에 이른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란 건축법상 5층 이상의 공동주택을 이르는 말이다. 다층구조의 공동주택은 고대 서양에서부터 있었는데, 로마시대에 지어진 인슐라(Insula)가 대표적이다. 인슐라는 귀족들이 서민에게 임대해 수익을 올리기 위해 만든 6~7층 구조의 건물로 1층에는 상가가 있고 그 위로는 주거 공간으로 쓰인 이른바 주상복합 건물이었다.
일반적으로 근대적 의미의 아파트는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등장하였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화로 인한 인구증가는 노동자들의 주거부족 현상으로 이어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 아파트였던 것이다. 이 아파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를 통하여 나타나고 있는 도시인구 집중과 도시화 추세로 세계적으로 그 건설이 촉진되었다. 적은 면적의 땅에 위로 겹겹이 주택을 쌓아갈 수 있다는 장점으로 아파트는 점점 더 고층화 되어 가고 있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우리 땅에 아파트가 세워진 것은 언제쯤일까?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는 1932년 일제에 의하여 세워진 서울 충정로의 5층짜리 아파트다. 이 아파트는 현재도 계속 남아서 실제 거주하는 사람이 있는 아파트로 기능을 하고 있는데, 서울시에서는 이를 ‘미래유산’으로 지정하고 있다.
광복 후 우리 손으로 지은 최초의 아파트는 1959년에 지어진 종암아파트이다. 1962년에는 대규모 단지인 마포아파트가 건립되었다. 당시 마포아파트 단지는 6층 10개동 642세대로 전국 아파트 중에서는 최고로 많은 가구 수를 보유하였다. 애초에는 10층짜리 고층아파트로 계획하였지만, 당시 전기 부족으로 엘리베이터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생기자 설계 층수를 낮추어 6층으로 지었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 붐이 일게 된 것은 1960년대 말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수립되면서부터이다. 도시화로 인한 인구의 밀집으로 주택부족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일반주택에 서너 가구가 함께 사는 주거형태가 많아 ‘한지붕 세가족’이라는 드라마가 나와 장수프로그램이 될 정도였다. 한 집에 여러 가구가 살다보니 부작용도 많아져 ‘세들어 사는 설움’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집을 가지고 싶다는 열망이 거세지고 이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아파트 건설이 촉진되었다.
1962년 정부 주도로 주택건설을 추진하는 대한주택공사가 생겼다. 대한주택공사, 통칭 ‘주공’으로 불린 이 기관은 도시화에 따른 주택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건설과 신도시, 신시가지 건설에 앞장섰다. 주공을 뒤따라 많은 건설회사들이 아파트 건설에 뛰어 들었다.
1970년대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건설의 시대였다. 당시 극장에서 상영하던 ‘대한뉴스’에 ‘우리는 건설한다.’라는 고정코너가 있어 전국의 건설소식을 알릴 정도였다. 아파트 건설도 이 건설 붐에 힘입어 그야말로 상승세를 탔다. 지방보다는 인구 밀도가 높은 서울에서부터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마포 아파트 단지부터 정릉·홍제동·문화촌 등에 소규모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한남동의 힐탑 아파트, 화곡동 아파트, 이태원의 탑라인 아파트 등 대형 고층아파트가 세워졌다.
특히, 1970년 중·상류층을 위한 큰 평형의 한강맨션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본격적으로 아파트 건설 붐이 일어났다. 한강맨션 아파트는 우리나라 최초의 중앙식 중온수공급(中溫水供給) 보일러를 설치하여 아파트 주거의 편리함을 증진시켰다. 이는 아파트에 대한 인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아파트는 편리하고 고급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이후 지어진 아파트들은 대부분 한강맨션 아파트를 따라 중앙난방을 채택하였다.
이때부터 서울의 반포·여의도·잠실 등을 비롯하여 전국 여러 도시에 학교와 시장, 어린이놀이터, 조경지역, 주차장 등 사회적 편익시설을 갖춘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들이 형성되었다. 당시 정부 주도로 이루어진 강남개발에 따라 조성된 압구정동의 아파트 단지에는 사회 지도층들이 대거 이주함으로써 아파트 단지는 부촌이라는 인식까지 생겨났다.
처음 아파트가 지어졌을 때 일반사람들이 가졌던 공동주택에 대한 거부감은 사라지고 아파트 거주야말로 깨끗하고 편리한 문화생활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아파트는 어느 틈에 일반주택보다 우위에 선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공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강남 개발 이후 서울은 인구 분산을 위해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구성된 신시가지를 여러 곳에 속속 건설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만들어진 목동 아파트 단지와 상계동의 아파트 단지 뿐만 아니라 1990년대 조성된 일산, 분당, 산본 등의 서울 근처 도시들은 모두 아파트촌으로 기획되었다.
최근 아파트는 또 한 번의 변화를 겪고 있다. 이전까지 성냥갑을 쌓은 것처럼 일자형으로 지어졌던 건물 형태에서 탈피하여 일조권을 보장하는 방사형 건물이 지어진다거나, 여타 아파트와 달리 고급화를 추구하는 아파트 브랜드가 생겨났다. 이와 더불어 건물 수명과 관련하여 재건축이 이루어지고 점점 더 고층화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아파트는 이제 도시의 전유물이 아니다. 요즘은 서울 및 대도시뿐만 아니라 지방의 읍·면 단위에서도 아파트는 일반화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