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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으면 본전, 틀리면 공공의 적  일기예보

비가 온다고 해서 우산을 준비하면 거짓말처럼 날이 개고, 맑은 날이라고 하면 비가 오는 일이 잦자 사람들은 일기예보가 아니라 ‘일기예언’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날씨를 미리 알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우리 땅에 일기예보가 시작된 날부터 일기 예보의 어제와 오늘을 여러 기록을 통해 살펴보려 한다.

  • 제1회 세계기상일 기념행사(1961, CET0062004(1-1)) 참고 이미지
  • 제1회 세계기상일 기념행사(1961)
  • 제8회 세계기상의 날 행사(1968, CET0102942(2-1)) 참고 이미지
  • 제8회 세계기상의 날 행사(1968)
  • 중앙기상대 현판식(1982, CET0104171(1-1)) 참고 이미지
  • 중앙기상대 현판식(1982)

기상 관측은 언제부터?

신라 선덕여왕은 천문기상 관측소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첨성대를 세웠고 세종대왕 시대엔 서양보다 200여 년 앞서 1441년에 세계 최초의 측우기를 발명했다. 농업을 근간으로 했던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기상변화에 깊은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기상청은 우리나라에서 과학적 방식의 근대 기상 관측이 시작된 때를 대한제국 시절인 1904년으로 잡고 있다. 1904년 3월 25일 전남 목포에 처음으로 측후소(測候所)가 설치돼 기온·강수량·날씨 등을 정기적으로 관측했다. 이어, 부산, 인천, 원산 등지에도 잇따라 측후소가 세워지면서 전국적인 관측망이 갖춰지고 근대적인 기상 관측이 가능하게 됐다. 당시엔 통신이 발달하지 않아 일기예보를 단번에 많은 사람에게 전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사용된 것이 깃발이었다. 바람의 방향을 가리킬 때에는 삼각형 깃발을 사용했다. 북풍은 흰색기, 동풍은 녹색기, 남풍은 적색기, 그리고 서풍은 청색기였다. 또 날씨는 사각형 깃발로 나타냈는데 흰색은 맑음, 적색은 흐림, 청색은 비, 녹색은 눈이었다. 예를 들어 흰색 삼각형기와 적색 사각형기가 함께 달렸다면 오늘은 북풍이 불겠고, 날이 흐리다는 뜻이었다. 밤에는 깃발 대신 큰 전등을 달아 색깔별로 표시해서 다음 날 새벽의 출어에 대비토록 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미군정청 문교부 산하엔 관상국이 설치됐고, 1948년 8월 15일에 발족한 ‘국립중앙관상대’도 문교부 소속이었다. 그러나 1963년 2월 ‘중앙관상대’로 개칭되면서 소속도 교통부로 옮겼다. 1967년 4월에 과학기술처로 소속이 다시 바뀌었다. 1961년에는 「기상업무법」이 제정됐으며 1962년도에는 국내 첫 자동 일기예보기가 등장하였다.

[대한뉴스 제396호] 자동 일기예보기 등장(1962, CEN0000314(6-1)) 참고 이미지
[대한뉴스 제396호] 자동 일기예보기 등장(1962)

1982년 1월에는 중앙관상대는 중앙기상대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기상을 관측한다’는 ‘관상(觀象)’이 ‘얼굴 보고 운명을 판단한다’는 ‘관상(觀相)’과 혼동된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1990년, 기상청으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기상청은 지상관측소 588개, 고층기상관측소 15개, 해양관측소 113개, 해양기상관측선 1척, 기상레이더 10개소, 낙뢰 관측장비 21개소, 항공기상관측장비 8개소, 지진관측장비 156개소 등을 구축하고 실시간으로 기후를 관측하고 있다. 관측소를 통해 수집된 강수·강설·온도·습도·기압·풍향·풍속·일사량 등의 정보는 기상청 본청 및 각 지방 기상청 등으로 전달되어 ‘슈퍼컴퓨터’를 통해 해석된다. 이후, 다양한 관측 자료에 예보관의 전문적인 지식을 더해 기상 예보가 이뤄지고, 방송과 신문,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우리나라 방송의 시작은 일기예보를 타고~

지금과 같은 방송 일기예보를 처음 시작한 것은 1925년의 일이었다. 라디오 방송국을 세우기 위해 시험방송을 할 때, 주 4일 동안 저녁 7시에서 9시까지 일기예보를 내보냈다. 이때의 일기예보는 인천의 측후소에서 전화로 불러주는 것을 기록해서 그대로 읽었고 일기 예보가 아닌 ‘천기 예보’라고 불렀다. 1961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TV 방송을 시작한 이후 뉴스 말미에 기상 뉴스가 전해졌고 1965년부터 기상대 직원들이 직접 라디오에 출연해 일기 예보를 시작했다. 지금은 기상캐스터란 직업이 존재하지만, 당시엔 기상청 소속의 공무원인 기상통보관이 날씨를 전했다. 1980년대는 크로마키(영상합성) 기술이 존재하지 않아, 기상 통보관이 일일이 직접 일기도를 그려가면서 설명을 했다. 백지도 위에 투명 필름을 덧붙이고 고기압과 저기압 중심부나 날씨 표시 같은 고정된 표기는 뒤에 자석을 달아 붙여놓고 수성 사인펜으로 바람의 방향 등을 그리며 날씨를 설명하던 시절도 있었다.

[대한뉴스 제410호] 기상의 날(1963, CEN0000328(10-1)) 참고 이미지
[대한뉴스 제410호] 기상의 날(1963)

슈퍼컴퓨터의 도입

보다 정확한 기상 예측을 위해 기상청은 1999년 슈퍼컴퓨터를 처음 도입했다.

“이 슈퍼컴퓨터의 주전산기는 초당 1280억 번의 연산을 할 수 있어 현재 전지구예보모델을 이용해 5시간이 소용되는 10일 기상 예측이 5분만에 가능해지는 등 60배 이상의 계단 단축 효과가 예상된다.”

<기상청 슈퍼컴퓨터 오늘 가동>,《매일경제》, 1999.06.01.

하지만 그 기대감은 오래 가지 못했다.

“지난 달 31일부터 1일까지 중부지방에 내린 이번 폭우에 대해 기상청은 강우 직전 최고 200mm의 비가 올 것으로 예보했으나 실제 강우량은 이보다 2배 이상 많았다.”

<1,300만불짜리 슈퍼컴퓨터 있으나마나 또 물먹인 기상예보>,《경향신문》, 1999.08.02

당시 200억 원을 들여 도입한 슈퍼컴퓨터가 예보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기상청은 5년마다 슈퍼컴퓨터를 교체하고 있다. 현재는 슈퍼컴퓨터 4호기가 도입됐으며, 48억 명이 1년간 계산할 양을 1초 만에 처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기상청은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종합성능 50페타플롭스(Petaflops) 상당의 '슈퍼컴퓨터 5호기'를 추가로 도입할 방침이다.

기상예보능력현황 및 개선대책(2001, BA0673879(8-2)) 참고이미지
기상예보능력현황 및 개선대책(2001)

현재 일기 예보는 나들이 지수, 세차 지수, 빨래 지수, 불쾌 지수 등 우리의 일상생활에 날씨가 미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각종 지수를 통해 발표하고 있다. 또한 환경오염이 심각해지면서 우리는 미세먼지 수치, 황사가능성 등을 일기 예보를 통해 수시로 확인하게 됐다. 산업 분야에서도 ‘날씨경영’이 도입됐고, 조선소나 전자업체, 빙과업체, 여행업계, 패션계 등이 기상마케팅을 펼치는 만큼 정확한 기상예보가 국력이 된 시대다.

(집필자 : 최유진)

참고자료

  • 기상청 홈페이지 (http://www.kma.go.kr)
  • 『한국 최초 101장면』, 가람기획, 1998.
  • 『살아있는 과학 교과서』, 휴머니스트, 2011.
  • 기상청 기후국 기후정책과, 『근대기상 100년사』, 2004.
  • 「밤도 없고 낮도 없다 뭍의 등대지기 관상대의 애환」, 동아일보, 1972.02.03.
  • 「비오면 조리빵, 더우면 크림빵'…날씨에 답 있다」, 한국경제, 2018.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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