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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연기 따라 역사는 흐른다 담배

“피우는 사람이 많아지니 심는 사람도 많아진다(食之者旣多種之者隨多)”(『승정원일기』 1,028책, 영조(英祖) 24년 4월 30일)

중․장년층에게 담배는 수십 년 전 그들의 아버지에 대한 향수이기도 하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단칸방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후 아버지가 피우시던 담배 한 모금은 고된 하루를 마친 아버지의 휴식이었고, 가장의 권위이기도 했다. 담배연기를 바라보다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도 아버지 곁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아이들의 모습은 이젠 담배연기처럼 아스라이 사라져버렸다.

담배의 전래

우리나라에 담배가 처음 들어 온 시기는 임진왜란 때로 보는 것이 통설이므로 17세기 초부터 민간에 퍼졌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담배는 일본을 거쳐 들어왔거나, 중국을 내왕하던 상인들이 들여왔다고 하는데, 초기에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즐겼으며, 약초로 여기기까지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처음 등장하는 담배에 대한 기록은 광해군 시기인 1623년 동래(東萊) 왜관(倭館)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이었다. 당시 화재로 왜관 80칸이 모두 타버렸는데, 왜인들이 담배를 즐겨 피우다가 담뱃불이 떨어져 화재가 난 것 같다는 기록이다.

우리나라에서 궐련(卷煙)이 처음 판매된 것은 1897년 청나라 상인들이 들여온 영국상사의 ‘칼표’ 담배였고, 생산·판매된 것은 1905년 일본인에 의해 생산된 이글표(매표) 담배였다. 이후 연초회사들이 점점 늘어나며 각종 브랜드의 담배들이 시중에서 판매되다가 1945년 9월 광복을 기념하여 만든 궐련담배 ‘승리’가 출시되었다. 당시 많이 피우던 쌈지담배인 ‘풍년초’와 다르게 흰 종이에 깨끗하게 말려있는 ‘승리’는 그 자체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당시 쌀 한말 가격이 45원이던 시절에 3원이나 하던 ‘승리’를 서민들이 쉽게 사서 피우기는 어려웠다.

국산담배를 애용합시다 참고 이미지
국산담배를 애용합시다(1956)

‘승리’에 이어 ‘백두산’, ‘무궁화’, ‘계명’, ‘백구’ 등이 출시되었다. 1949년에는 국군 창설 기념으로 최초의 군용담배인 ‘화랑’이 생산되었는데, 6·25전쟁 시기 널리 애창된 「전우야 잘 자라」 라는 곡에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라는 가사로 등장하기도 했으며, 1981년까지 32년간 생산되어 애용되었다. 1958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필터 담배인 ‘아리랑’이 나와 점차 품질이 향상되며 1976년까지 판매되었다.

[대한뉴스 174] 새로나온 담배 아리랑 참고 이미지
새로나온 담배 아리랑(1958)

1960년대부터 담배 잎은 수출품목이 되어 농가와 국가재정에 도움이 되었고, 당시 정부시책을 반영한 ‘새마을’, ‘새나라’, ‘희망’, ‘자유종’, ‘상록수’, ‘청자’ 등이, 1970년대엔 ‘환희’, ‘한산도’, ‘거북선’, ‘남대문’ 등이 출시되었다. 1980년대에는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88’이 출시되었고, ‘솔’ 시리즈의 담배도 많은 인기를 누렸다. 1990년대 이후 국산 담배의 수출이 본격화되고, 양담배 시장이 개방되면서 영어식 이름의 담배인 ‘THIS', 'ESSE', 'SIMPLE' 등이 출시되어 지금까지 판매되고 있다.

국산 담배를 애용합시다

1980년대 이전 정부에서는 양담배 배격운동을 벌였다. 당시 국산 담배는 양담배에 비해 질이 낮았고, 엽초의 생산량이 저조하여 값이 비싼 편이었다. 자연히 양담배의 소비는 늘어났고, 국가 전매품인 담배를 지키고 농가의 보호를 위해 정부는 강력한 양담배 단속을 실시하였다. 1950년대에는 공무원들에게만 금지하였으나 국내 담배생산량이 증가하자 점점 단속이 강력해졌고, 1970년에는 누구든지 양담배를 피우거나 판매할 경우 최소 1만 원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또한, 국민경제 실정을 고려하고 국산 담배의 소비를 늘리기 위해 1961년 정부는 300환이던 ‘파고다’ 담배값을 250환으로 인하하기도 하고, 1977년에는 국산 담배의 질을 양담배 수준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장단기 개선방안을 세워 꾸준히 품질을 향상시켜 나갔다. 이러한 노력으로 1986년 양담배 시장이 개방되었을 때, 품질로 인해 국산담배가 외면 받지는 않았다.

담배품질 개선방안 참고 이미지
담배품질 개선방안(1977)

금연운동

국민 건강을 위해 1995년 8월 국무회의는「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하고, 9월 1일부터 미성년자에게 담배 판매를 금지하고, 공공시설에서의 금연을 의무화하였다. 이를 위반하면 장소에 따라 2만 원 또는 3만 원의 과태료를 물리도록 한 것인데, 1997년 1월부터는 모든 옥외 담배광고마저 전면 금지시키고, 담배의 위해성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등 금연정책은 점점 더 강력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 중 흡연률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성년 남성들의 흡연인구는 다소 줄어들고 있지만, 여성과 청소년 흡연인구가 늘어나는 현실을 보면 담배와의 전쟁은 앞으로도 쉽게 끝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금연운동확산 참고 이미지
금연운동확산(1988)
(집필자 : 조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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