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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오전· 오후 2부제 수업에 ‘콩나물 교실’이 대부분

의무교육이란 ‘일정한 학령기의 취학을 제도적으로 의무화한 교육’으로 근대국가의 성립 이후 교육의 기회균등사상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다. 국가는 모든 국민이 사회적 신분이나 경제적 지위의 차별 없이 그 능력에 따라 일정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인정하고 그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의 기회를 평등하게 부여하고 있다. 의무교육의 본질은 공공의 책임으로 교육권(敎育權)을 보장하는 데 있으며, 이를 통하여 국력을 신장하고 사회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의무교육제도를 크게 보면 ① 취학의 의무 ② 학교설치의 의무 ③ 교육보장의 의무의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즉, 보호자에게는 아동을 취학시킬 의무를 주고, 지방공공단체에는 학교설치의 의무를, 제3자에게는 교육보장의 의무를 부여하여 국민은 누구나 일정한 기간 동안 의무 교육을 받게 하고 있다. 의무교육은 학령아동의 완전취학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교육을 받는 학생에게 일체의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고 무료로 실시하는 무상교육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해당국가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에 따라 무상화의 정도가 달라지기도 하지만 최소한 입학금과 수업료의 면제는 공통적이다.

우리나라 초등교육의 의무화는 미군정 하에서 구상되었는데, 1948년 「헌법」 제31조에 “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 “적어도 초등교육은 의무이며 무상으로 한다.”고 규정하였다. 1949년에는 「교육법」 제8조 “모든 국민은 6년의 초등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국가와 지방 공공단체는 초등교육을 위하여 필요한 학교를 설치 경영하여야 하며, 학령 아동의 친권자 또는 후견인은 보호하는 아동에게 초등교육을 받게 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였다.

교육법 썸네일 이미지
교육법(1949)

이후 1950년 6월 1일 의무교육 시행에 들어갔으나, 6.25전쟁 발발로 시행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1951년에는 초등교육 취학률이 후퇴하여 정부수립 당시보다도 떨어진 86.2%였다. 본격적으로 의무교육 정책이 추진된 것은 1952년 4월 「교육법 시행령」 공포 이후이다. ‘의무교육완성 6개년 계획’이 수립되어 1954년부터 1959년까지 6개년 간 총 학령아동의 취학률을 96%까지 끌어 올리고 교실을 증축하며 이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는 것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였다. 이 계획의 추진을 위해 정부는 문교예산의 75∼81%를 의무교육에 충당하였고, 임시토지소득세환부금제도, 교육세, 의무교육재정교부금법 등을 제정한 것을 비롯하여 교육정책의 최우선 과제로서 의무교육에 역점을 두었다. 그러나 인구증가에 따른 학령아동의 증대와 교육재정 부족으로 의무교육 환경은 열악하여 다부제수업(多部制授業), 법정규모를 넘는 과대규모 학교, 다인수학급 등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국무회의안건] 의무교육 6개년 계획 수립 실시에 관한 건 썸네일 이미지
의무교육 6개년 계획 수립 실시에 관한 건(1953)

1959년 ‘의무교육완성 6개년 계획’이 끝날 무렵에 우리나라 초등학교 취학률은 당초 계획을 초과하여 96.4%를 달성, 완전취학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재원 확보가 되지 않아 학교 시설과 교실 증축은 계획을 달성하지 못하였으며 교원 확보에도 미비한 점이 있었다. 학급당 80명을 넘는가 하면 하루에 3부제 수업을 하는 학교도 있었다. 천막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교실을 반으로 나누어 광목천으로 가리고 두 학급이 쪼개서 쓰기도 했다. 책·걸상을 놓을 공간이 없어 바닥에 엎드려 공부를 하고, 교실이 협소하여 맨 앞줄 학생은 칠판과 맞붙어 앉아 수업을 받기도 했다. 정부는 학교시설 및 교원 확충을 위하여 1962년부터 ‘제1차 의무교육시설확충 5개년 계획’을, 그리고 1967년부터 ‘제2차 의무교육시설확충 5개년 계획’을 실시하여, 1971년에 초등교육 의무교육 정책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의무교육의 정상화 공청회 썸네일 이미지
의무교육의 정상화 공청회(1961)
의무교육의 정상화 공청회 썸네일 이미지
의무교육의 정상화 공청회(1961)
한양공고 학생 의무교육 아동책상 제작 썸네일 이미지
한양공고 학생 의무교육 아동책상
제작(1962)

1970년대에는 교육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인식이 더욱 높아져 교육을 위한 지원이 강화되었지만, 한 반에 학생이 60명이 넘는 콩나물 교실에다, 교실 하나를 두 개의 반이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어 쓰는 2부제 수업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다행히 1971년을 고비로 취학아동수가 감소하기 시작하였고, 교육재정능력도 점차 강화·증대됨으로써 의무교육의 조건은 대체로 개선되기 시작하였다.

연대별 초등학교의 학급당 학생수를 살펴보면, 1970년 62.1명에 달했으나 1980년 51.5명, 1990년 41.4명에 이어 1992년 39.9명을 기록하면서 처음 30명대에 진입했다. 한국교육개발원과 교육과학기술부가 발간한 『2008 교육정책 분야별 통계』 자료집에 따르면, 2007년 전체 초등학교의 학급당 평균 학생수는 29.2명으로 처음으로 30명대 이하로 떨어졌다.

1984년 중학교까지 의무교육 확대

1971년에 전국적으로 실시된 중학교 무시험진학제는 중학교의 수용능력 확대와 평준화를 이루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특히 중학교 취학률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킴으로써 중학교 의무교육 실시를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 구실을 하였다. 중학교 의무교육은 ‘제5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의 일부였다. 1984년 8월 2일 교육법을 개정하고 중학교 의무교육 실시의 법적 기반을 마련한 뒤, 1985년 2월 21일에 중학교 의무교육을 도서·벽지 중학교부터 우선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1992년 「중학교의무교육실시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1994년에는 읍면 지역까지 전면 확대하였다. 2001년 10월에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였고, 관련 소요재원의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간 부담 방안을 정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과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을 2001년 12월 개정 공포함으로써 중학교 의무교육의 전면적 추진이 이루어져 2002학년도 신입생부터 단계적으로 확대 실시할 수 있게 되었다.

[국무회의록] 중학교 무상 의무교육 전면확대 계획 썸네일 이미지
중학교 무상 의무교육 전면확대 계획(2001)

1999년도에 우리나라 초등학교 취학률은 100%를 달성했고, 초등학교 졸업생의 중학교 진학률은 99.9%로서, 주요 선진국에 비하여 1세기 정도 늦게 출발하였지만 취학률은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수준에 올랐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양적 증가 및 발전과 더불어 의무교육의 확충과 질적인 향상을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집필자 : 남애리)

참고자료

  • 교육개혁심의회, 『중학교 의무교육 확대실시방안』, 교육개혁심의회, 1987.
  • 교육부(http://www.moe.go.kr)
  • 교육부, 『교육50년사』, 교육부, 1998.
  • 문교부, 『문교40년사』, 문교부, 1988.
  • 하우동설, 『교육학대백과사전』,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1998.
  • 한국민족문화대백과(http://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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